경찰·소방당국 관계자들이 지난달 26일 KT 아현지사 화재현장을 감식하기 위해 지하 통신구로 들어가고 있다.  /한경DB
경찰·소방당국 관계자들이 지난달 26일 KT 아현지사 화재현장을 감식하기 위해 지하 통신구로 들어가고 있다. /한경DB
지난달 24일 지하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한 KT 아현지사가 C급 중요통신시설인데도 D급으로 축소 분류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KT에 과태료를 물리기로 했다. 또 앞으로 통신 장애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각 통신사가 D급 통신시설까지 통신망 우회로를 의무적으로 확보하고, 재난 발생 시 가입하지 않은 타사 통신망으로 전화나 인터넷을 쓸 수 있게 하는 후속 대책도 마련했다.

“C등급으로 상향 직전 화재 발생”

27일 과기정통부가 노웅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게 제출한 ‘KT의 법령위반 검토 현황’에 따르면 KT는 아현지사의 관할 범위가 늘어나면서 중요통신시설(A~C급)에 해당됐지만 이를 정부에 보고하지 않아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을 위반했다.

서울 지역 4분의1이 '통신대란'이었는데…정부는 KT에 통신구 등급 시정명령만
아현지사와 같은 통신시설은 재난 시 피해 범위에 따라 A~D등급으로 구분한다. A급은 수도권, 영남권, 호남권 등 광역 권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B급은 광역시·도, C급은 3개 이상 시·군·구에 영향을 미치는 시설이다. D급은 단일 시·군·구에 영향을 미친다.

A~C등급은 중요통신시설로 분류돼 정부가 직접 관리하고 대체설비, 우회망 확보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반면 D등급은 사업자가 관리한다. 중요통신시설에 대한 등급 분류는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시행해 과기정통부에 신고해야 한다.

KT는 2015년 원효지사의 시설을 아현지사로 통합했다. 지난해 명동 중앙지사의 시설 일부를 아현지사로 옮긴 데 이어 올해는 광화문지사 기능 일부를 이관했다. 노 위원장은 “2015년 원효지사를 통합하면서 통신재난 범위가 3개 자치구에 해당돼 C등급으로 상향했어야 했다”며 “중앙지사, 광화문지사 추가 통합으로 통신 재난 범위가 서울의 4분의 1 이상으로 확대됐지만 여전히 D등급으로 축소 분류했다”고 지적했다.

KT는 통신망 운영을 효율화하기 위해 이 같은 통합작업을 했다. 회사 관계자는 “2015년 원효지사를 아현지사에 통합했으나 1개 구 일부가 들어왔을 뿐 3개 구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상향 조정을 하지 않았다”며 “올해 광화문지사 기능을 이전하면서 아현지사 등급을 D등급에서 C등급으로 상향 조정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신고 기한이 11월 말까지여서 서류를 준비했지만 제출하기 전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게 KT 측 해명이다.

장석영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은 “지난 5일 KT에 아현지사 분류 등급을 조정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며 “KT의 이행 결과를 보고 과태료나 법적 조치를 내리겠다”고 말했다.

D등급 시설도 통신망 우회로 확보

과기정통부는 이날 통신장애 피해를 줄이기 위한 ‘통신재난 방지·통신망 안정성 강화대책’도 내놨다.

먼저 통신재난이 발생했을 때 인근 지역까지 장애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D등급 통신시설까지 통신망 우회로를 확보해 이원화하도록 했다. 구체적 기술 방식은 다음달 정보통신재난관리심의위원회를 구성해 결정키로 했다. 통신망 우회로 확보 투자비용을 고려해 통신사별로 유예기간을 줄 예정이다.

통신재난 시 타사 통신망으로 전화나 인터넷도 쓸 수 있게 된다. 장애 발생 지역에서 기존 단말기로 다른 통신사의 무선 통신망을 이용할 수 있도록 로밍을 시행하기로 했다. 재난지역에는 각 통신사가 보유한 무선인터넷(와이파이)망을 개방해 모바일 인터넷 전화(mVoIP)도 쓸 수 있게 된다.

소방법을 개정해 500m 미만 통신구도 소방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통신사는 법령 개정 전이라도 내년 상반기까지 500m 미만 통신구에 자동화재 탐지설비와 연소방지설비 등을 설치하기로 했다. 정부는 사업자가 자체 점검했던 D등급 통신시설도 2년마다 직접 점검하는 등 관리를 강화한다. A~C등급 시설의 점검 주기는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한다.

민원기 과기정통부 2차관은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망이 구축됐지만 KT 통신시설 화재를 계기로 통신재난에는 대비가 부족했음을 알 수 있었다”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미흡한 부분은 강화하고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