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제약 연구원이 본사 연구소에서 의약품 개발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대화제약 제공
대화제약 연구원이 본사 연구소에서 의약품 개발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대화제약 제공
“먹는 파클리탁셀(탁솔)을 만들자.” 다국적 제약회사 BMS가 1993년 진행성 위암 치료 주사제 탁솔을 개발한 뒤 세계 제약사의 공통된 목표였다. 국내에서도 1999년 연구가 시작됐다. 마침내 국내 제약사 대화제약이 2016년 세계 최초로 마시는 파클리탁셀인 리포락셀의 시판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약은 아직 환자 치료에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지나치게 낮은 건강보험 약가 때문이다.

20조원 시장 겨냥한 혁신 개량신약

대화제약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약가 협상을 했지만 만족할 만한 가격을 받지 못해 결렬됐다. 대화제약이 신청한 약값은 24만원대였다. 하지만 심평원은 10만원대 약값을 책정하겠다고 통보했다. 대화제약은 재심사를 요구했고 내년 1월께 추가 협상 결과가 나온다. 이때도 만족할 만한 가격이 결정되지 않으면 대화제약은 비급여 의약품으로 리포락셀을 시장에 출시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리포락셀을 대신하는 파클리탁셀 주사제는 환자가 5%만 내면 치료받을 수 있어 비급여 약으로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했다.

대화제약은 지난해 중국 RMX 바이오파마에 28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을 했다. 중국에서 임상3상 시험을 하고 있다. 국내 약값이 싸게 정해지면 중국 수출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중국 정부가 한국 약값을 반영해 싼값을 요구하면 판매 가격이 원가보다 낮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포락셀의 주사제 제품인 파클리탁셀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조원이다. 세계 처음으로 이를 대체할 제품을 개발하고도 가격을 제대로 받지 못해 사장될 위기에 놓인 셈이다.

복제약 최저가 요구하는 심평원

"낮은 보험약가 탓…17년 공들인 혁신약 출시도 못하고 접을 판"
제약사가 의약품을 개발해 식약처에서 시판허가를 받으면 보험회사와 약가 계약을 한다. 한국은 이 시장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독점하고 있다. 계약이 결렬되면 환자가 약값을 모두 내는 비급여 의약품이 된다. 제약사에 건강보험 약가협상이 중요한 이유다. 약가제도에 따라 개량신약은 비슷한 약 중 가장 비싼 약의 90~110%를 약값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리포락셀은 달랐다. 개발 난도가 높은 약(새로운 투여경로 의약품)으로 분류돼 신약과 같은 약가 협상을 거쳐야 한다. 이때는 리포락셀과 비슷한 치료제와 가격을 비교해 결정한다. 비교 대상이 된 약은 파클리탁셀이다. 이미 복제약까지 출시돼 약값이 많이 낮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20여 년간 리포락셀 개발에 들어간 비용은 정부 예산 85억원을 포함해 200억원”이라며 “신약과 비슷한 가치가 있지만 제네릭 약값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약가 협상 과정에서 마시는 약의 이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상철 고대구로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리포락셀을 복용해 위암이 완치된 환자가 있는데, 이 환자에게 파클리탁셀 주사를 맞기 위해 매주 병원을 찾으라고 했다면 치료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환자가 집에서 쉽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라고 했다.

“임상 단계부터 약가 고려해야”

저렴한 약값 때문에 시장에서 고전하는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동아에스티는 2015년 슈퍼박테리아 항생제인 시벡스트로를 개발했지만 국내 제품 출시를 포기했다. 코오롱생명과학도 지난해 무릎 관절염 치료 효과가 있는 유전자 세포 치료제 인보사를 개발한 뒤 국내에서 비급여 의약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바이오신약에 대한 별도 평가 기준이 없어 제값을 받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개발 단계인 다른 개량신약도 리포락셀과 비슷한 과정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한림제약은 하루 두 번 먹는 신경통 치료제 프레가발린을 한 번 먹는 서방정으로 개발했다. 내년 식약처에서 프레가발린서방정 허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심평원은 업체에서 요구하는 가격의 64% 수준으로 약값을 검토하고 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