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25일 전날 화재가 발생한 KT아현국사를 찾아 통신장애 사태를 사과했다. / 사진=연합뉴스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25일 전날 화재가 발생한 KT아현국사를 찾아 통신장애 사태를 사과했다. / 사진=연합뉴스
“11월26일 18시 현재 이동전화 86%, 인터넷 98%, 유선전화 92% 등 빠른 복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황창규 회장 명의 사과문이 올라온 그 시각,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을 지나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지하철 노선도를 확인하던 참이었다. 인터넷이 끊겼다. KT 고객인 기자의 휴대폰 화면 상단에 통신이 원활하지 않다는 신호가 떴다. 공교롭게도 복구 안 된 나머지 14%에 해당된 것일까. 그래도 그렇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올해 들어 이런 경험은 딱 두 번이었다. 나머지 한 번은 강원도로 휴가 갔을 때. 워낙 산골짜기라 그런가보다 했다. 아니었다. ‘선(禪)’을 테마로 삼은 휴양지라 일부러 통신을 막아놓았던 것이다. 그곳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터졌다. 그럴진대 서울 한복판에서 휴대폰이 안 터진다니.

KT 아현지사 화재 당일인 지난 24일에는 어땠나.

주말 인천 집에서 아이를 돌보다 정오 좀 지나 휴대폰을 확인하니 부재중 통화가 몇 통 찍혀있었다. 발신 전화는 서울 동교동 편의점으로 나왔다. 회신하니 점원이 “어떤 분이 전화를 빌려 썼다”고 했다. 홍대로 외국인 친구를 만나러간 아내인 듯했다.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졌나. 그런 것 같진 않았다. 휴대폰을 100% 충전하고 보조 배터리까지 챙겨나가는 걸 본 터였다. 대체 무슨 일일까 찾아봤다. KT 지사 화재로 인근에 통신장애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내도 같은 KT 고객이다. 만삭에 가까운 임산부이기도 하다. 아내에게 10여차례 전화를 하고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종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아내가 약속장소를 벗어나 인천으로 넘어온 그날 저녁에야 비로소 통화가 됐다.

짐작대로 그날 아내는 ‘멘붕(멘탈붕괴)’을 겪었다. 홍대에 도착해 지도 앱(응용프로그램)을 눌렀는데 먹통이었다.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것도 안 됐다. 그제야 뭔가 문제가 생긴 걸 알았다. KT 고객센터에 문의했다가 “한 시간 정도면 복구될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 시간 가량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다가 복구되면 연락해 만날까 생각도 했단다.

하지만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아 기다리기보단 찾아 나서는 쪽을 택했다. 거리를 헤매다 근처 지리를 잘 아는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에 들어가 약속장소 상호를 댔다고. 위치를 알려달라 부탁한 끝에 아내는 겨우 친구들을 만났다. “다행히 어긋나진 않았네, 친구들 휴대폰 빌려서라도 전화 좀 해주지, 걱정하는데”라고 투덜대는 기자에게 아내가 말했다. “친구들도 ‘하필’ 전부 KT 휴대폰을 쓰더라고.”

가게에서 카드 결제가 안 됐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사람들이 몇 줄씩 섰다는 에피소드도 따라붙었다. 이야기 끝에 예상 못한 통신장애 때문에 몇 년 만에 보는 외국인 친구를 못 만났다면 어떡했을까,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마 피해보상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KT의 피해보상 방침은 피해지역 거주 고객 대상 1개월치 요금 감면 정도다. 실제 피해를 입었지만 해당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고객은 일단 논외인 것 같다.

아쉽다. 일일이 고객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애로점이 있다 해도 KT가 사과한다는 뜻이 잘 전달되지 않아서다. 기업의 존폐는 위기관리능력에 달려있다. 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한 사람이 청산가리 중독으로 사망했는데, 존슨앤존슨은 즉각 위기관리팀을 꾸려 미국 전역으로 리콜 시행을 확대해 총 3100만병을 회수했다. 위기의 기업이 진심을 고객에게 전해 전화위복 계기로 삼은 대표적 사례다.

화재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으나 사상 초유의 통신장애 사태를 빚었다. KT도 최소한 ‘호갱(호구+고객)’이란 느낌을 받지 않도록 진정성 있는 피해보상 및 재발방지책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