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KT의 길이 150m짜리 지하 통신관로에 불이 났다. 유·무선 전화가 불통되고, 카드 결제와 인터넷 서비스에 큰 장애가 발생했다. 피해 지역 내 병원은 물론 경찰청, 국방부의 일부 통신망까지 마비됐다.

병원·軍통신까지 '먹통'…플랜B는 없었다
불편을 겪은 시민, 자영업자, 기업 고객은 ‘통신대란’ ‘통신재난’ 수준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화재 발생으로 ‘정보기술(IT) 강국’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음달 초 5세대(5G) 이동통신 ‘세계 첫 상용화’ 선언을 앞두고서 말이다.

화재는 서울 충정로에 있는 KT 아현지사의 지하 통신관로에서 발생했다. KT 아현지사가 관할하는 서울 중구 용산구 서대문구 마포구 일대와 은평구, 경기 고양시 일부 지역이 피해를 봤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와 KT의 부실한 국가 기간통신망 운용과 관리다. KT에 따르면 전국 지사 56곳 중 아현지사와 같이 이중 백업시스템이 없어 화재로 대규모 통신장애가 발생할 위험이 있는 지사가 27곳에 이른다. 정부와 KT는 초연결 사회와 4차 산업혁명 시대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면서도 ‘플랜B’를 준비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사실’은 정부와 KT가 내놓은 사고 대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KT는 25일 “통신망이 마비됐을 때 다른 통신사 망을 사용하는 것을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통신 3사 간 우회로를 사전에 확보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후약방문’격이요, 만시지탄이다.

KT 등 통신 3사는 다음달 1일 5G 이동통신 주파수를 처음 송출할 예정이다. 5G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인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의 기반이다. 모두 통신사 기지국을 통해 연결하는 기술이고, 기지국은 지하 통신관로와 맞물려 있다. 화재든, 천재지변이든, 테러든 통신관로에 문제가 생기면 불시에 멈춰설 수밖에 없다.

우승엽 도시재난연구소 소장은 “모든 게 연결된 초연결사회에서는 한 분야에서 발생한 사고가 다른 분야로 전파돼 마치 도미노처럼 막대한 피해를 낳는다”고 말했다. “사고가 없는 시스템은 만들 수 없으니 플랜B를 미리 마련해 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홍열 IT과학부장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