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강남클럽에 뿌린 1억 돈다발, ICO투자금이었다…'가상화폐 규제공백'의 민낯
가상화폐 공개(ICO) 전면 금지 이후 1년 넘게 ‘규제 공백’ 상태인 암호화폐 시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ICO로 모은 투자금을 유흥에 탕진하는가 하면 대부업체가 암호화폐 거래소와 연결된 정황까지 보여 투자자들 불안이 커지고 있어서다.

◆ ICO 직후 강남 클럽에서 돈 뿌려댔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헤미넴’으로 알려진 남성이 최근 서울 강남 한 클럽에서 뿌린 약 1억원어치 돈다발의 출처가 ICO 투자금으로 추정된다.

헤미넴은 지난해 말부터 강남 클럽들에서 이런 식으로 돈을 쓰며 입소문을 탔다. 행적이 물의를 빚자 그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개인 홈페이지 계정을 폐쇄했다. 클럽에서 뿌리는 억대 자금은 어디서 나왔을까.

헤미넴은 한 언론 보도에서 자신의 주요 수입원을 투자분석 강연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올 초 서모씨와 함께 개인 투자자 대상으로 암호화폐 B코인의 프라이빗 ICO를 진행한 인물이다. “100만TPS(초당 처리속도)를 확보한 토종 블록체인”을 내건 W업체의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B코인 11억개를 발행해 한국·일본 등지에서 판매해 자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ICO를 통해 3000억~4000억원을 모금한 것으로 보고 있다. 헤미넴의 유흥비 역시 여기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헤미넴 머니드랍’이란 제목으로 돌아다니는 영상도 업계 용어인 ‘에어드랍’(암호화폐 발행자가 화폐 활성화를 위해 이벤트 성격으로 소유자에게 무료 배분하는 행위)을 연상시킨다.

함께 B코인을 발행한 서씨가 소유 차량을 카니발에서 롤스로이스로 바꾸고 SNS에 유흥을 즐기는 모습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헤미넴의 ‘머니드랍’과 시기가 겹친다. 헤미넴과 서씨는 지난 6월엔 유명 아이돌 빅뱅의 멤버 승리가 운영하는 강남 소재 클럽에서 1억원짜리 ‘만수르 세트’를 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작 B코인은 당초 홍보했던 대형 거래소 상장이 불발됐다. 글로벌 상위권 거래소인 바이낸스, 국내 거래소 빗썸 등에 상장된다고 강조했지만 빗썸 등은 B코인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실상 B코인 프로젝트는 중단돼 투자자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A 거래소는 사전 안내 없이 사무실을 이전해 투자자들의 불안을 샀다. 옮기는 주소도 공개하지 않았지만 투자자들은 해당 거래소의 채용정보 등을 조사해 주소지를 확인하고 항의 방문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입출금 계좌를 대부업체 계좌로 변경하기도 했다.
A 거래소는 사전 안내 없이 사무실을 이전해 투자자들의 불안을 샀다. 옮기는 주소도 공개하지 않았지만 투자자들은 해당 거래소의 채용정보 등을 조사해 주소지를 확인하고 항의 방문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입출금 계좌를 대부업체 계좌로 변경하기도 했다.
◆ 거래소 입출금계좌 '대부업체' 명의로

거래소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국내 A거래소는 지난달 26일 원화 입출금 계좌를 예금주가 대부업체인 계좌로 변경했다. 해당 거래소 배후에 대부업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기정사실화’된 셈이다.

투자자가 거래소를 통해 투자하거나 회수할 경우 거래소 계좌와 개인계좌 간 거래기록이 남는다. 거래소 입출금계좌가 ‘대부업체 명의 계좌’로 설정된 탓에 투자자들이 향후 금융거래시 불이익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은행권이 일종의 블랙리스트로 관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투자자들 불안이 커지자 A거래소는 곧바로 예금주 명의에서 대부업체명을 뺐지만 의구심을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그간 보인 일련의 행보 때문이다.

자체 암호화폐를 상장한 이 거래소는 가격 변동이 심해 투자자들 사이에서 투기성 거래소로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원화 입출금 처리 지연 문제로 항의 방문하는 투자자도 상당수였다. 그러자 투자자 항의방문을 이유로 이전 주소를 공개하지 않고 사무실을 옮겨 투자자들과 ‘추격전’까지 벌였다.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사고도 터지는 등 수 차례 문제를 일으켰다.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 공백이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을 이같은 위험에 노출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소한의 자기 자본이나 보안, 상장 규정도 갖추지 못한 거래소가 난립하고 불법 다단계 업체들의 ICO 사기(스캠)가 성행하는 토대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업계는 관련 규제 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진대제 한국블록체인협회장이 제안한 가이드라인이 대표적. 진 회장은 “ICO 백서 검증기관을 두고 투자자들을 위해 프로젝트 현황과 자금 사용내역, 재무제표 공시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했다. 거래소에 대해서도 △자기자본금 20억원 이상 △상장위원회 운영 △불법거래 및 가격조작 감시시스템 구비 △재무건전성 보고 요건 등을 제시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역시 8일 입장문을 내고 블록체인 산업 제도화를 위한 법령 정비를 촉구할 예정이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