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의 조세 회피와 불공정 거래를 해소하기 위한 압박에 나서고 있다. 영국이 이들 기업에 별도 세금을 매긴다고 발표한 데 이어 일본은 IT기업의 데이터 독점을 규제할 예정이다. 앞서 유럽연합(EU)은 시장지배력 남용 혐의로 구글에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국내에서는 별다른 조치가 없어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글의 시장지배력 규제 나선 일본

외신과 IT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5일 글로벌 IT기업인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일명 ‘GAFA’를 겨냥한 규제 방안을 발표했다. 이들 기업의 일본 내 불공정 거래 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다.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글로벌 IT기업의 각종 데이터 과점이 공정 경쟁을 저해하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또 법학, 경제학, 정보처리, 시스템공학 등 관련 전문가로 조직을 신설해 IT기업을 지속적으로 분석할 계획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들은 개인의 구매, 행동 등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해 시장에서 존재감이 압도적”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또 이들 IT대기업을 규제하기 위해 독점금지법에 새로운 규칙도 마련할 예정이다. 구글 등의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과 계약의 불투명성 등으로 자국 내 거래 기업이 부당하게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이 지난달 진행한 조사에서 미국 IT기업과 거래한 1933개 일본 기업의 80% 이상이 ‘일방적인 약관 변경’ 등으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답했다.
英 이어 日까지 구글의 불공정행위 잡겠다는데…한국은 뒷짐만
영국 스페인은 별도 세금 부과

영국은 글로벌 IT기업의 조세 회피에 제동을 걸었다. 영국 재무부는 지난달 온라인 플랫폼이 주력인 기업에 법인세와 별도로 디지털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연매출 5억파운드(약 7300억원) 이상 기업이 대상이며, 이들 기업이 영국에서 얻은 매출의 2%를 세금으로 걷을 방침이다. 영국이 디지털세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글로벌 IT기업이 수익에 비해 세금을 적게 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지난해 영국에서 8000만파운드(약 120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세금으로 460만파운드(약 67억원)를 냈을 뿐이다. 글로벌 IT기업은 고정 사업장이 있는 국가에 법인세를 내도록 한 국제조세조약 규정을 활용해 법인세율이 낮은 곳에서 세금을 내고 있다. 스페인도 내년부터 매출의 3%를 부과하는 디지털세를 도입할 예정이다. EU도 올 3월 처음으로 디지털세를 도입하는 방안을 놓고 논의 중이다.

EU는 지난 7월 구글에 반독점 규정 위반으로 43억4000만유로(약 5조6000억원)의 벌금을 매겼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사용하는 스마트폰, 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 제조사에 자사의 각종 앱(응용프로그램) 설치를 강제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 구글 안전지대?

주요 국가들이 글로벌 IT기업을 규제하기 위해 제도를 정비하는 것과 달리 한국 정부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서도 구글의 조세 회피, 불공정 거래 행위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구글은 스마트폰 앱 장터 구글플레이, 광고 등으로 한국에서 매년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나 법인세 납부액은 200억원이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기획재정부는 디지털세 도입이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세계 각국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우려해 디지털세 도입에 소극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위는 올해 초부터 구글이 국내 게임업체를 대상으로 자사 앱 장터에 게임을 출시할 것을 강요한 혐의를 조사하고 있지만 연말이 다가왔는데도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공정위의 과거 소극적인 행정도 문제로 지적된다. 공정위는 2013년 구글이 안드로이드 OS 기반의 스마트폰에 검색엔진을 집어넣는 과정에서 경쟁 업체를 부당하게 배제했다는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반면 EU는 같은 사안에 올해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2월 국내외 인터넷기업 간 역차별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인터넷상생발전협의회를 신설했지만 구체적인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