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위험한 실험’…도입 논의 중단해야"
최근 국정감사에서 일부 여당 국회의원들이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을 강하게 주문했다. 이에 대해 유 장관은 요금할인, 유통구조 문제 등 제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면서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2월 정부부처, 이해관계자와 시민단체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에서 100일이 넘는 격론 끝에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여당과 정부가 스스로 만든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도출된 의견을 불과 8개월여만에 뒤집고, 갑자기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가계통신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인 것처럼 방향을 급선회한 것이다.

하지만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에서 제기된 바와 같이 단말기 보조금을 갈음하는 선택약정요금할인제의 폐지에 따른 통신비 부담 문제, 전국적으로 최소 2만개 이상에 달하는 단말기 대리점과 판매점의 폐업으로 인한 관련 종사자 약 6만여명의 일자리 문제 등 단말기 완전자급제의 도입에 따라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해결책이 새삼스레 마련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현재 시장에서 제조사들이 자급 단말기를 지속적으로 출시함으로써 단말기 자급률이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다. 인위적으로 단말기와 이동통신서비스의 결합판매를 원천 금지하는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영업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결합판매를 통한 경쟁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과연 가계통신비 인하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한 검증이 전혀 이루어진 바 없다는 것이다. 현재 일부 국회의원들이 밀어붙이고 있는 단말기 완전자급제 논의에서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실제 가계통신비 인하 등의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실증적인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단말기 완전자급제만 도입되면 곧바로 가계통신비가 내려갈 것이라는 주장은 통신시장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간과한 것일 수 있다. 단말기 제조사들은 글로벌 시장환경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완전자급제 도입으로 단말기와 이동통신서비스 판매가 인위적으로 분리된다고 해서 국내 소비자만을 위해 단말기 가격을 내릴 것인지 의문이다. 또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와 마찬가지로 완전자급제를 통해 보조금 재원을 아낄 수 있는 이동통신사들이 그 돈을 과연 통신비 인하에 사용할 것인지 등에 대해 납득할 만한 검증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단말기 완전자급제의 규범적, 실증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연구결과가 눈에 띈다. 필자도 단말기 완전자급제에 대한 법적 검토 - 경쟁법·규제법의 관점에서라는 논문을 통해 단말기 완전자급제로 단말기와 이동통신서비스의 결합판매를 원천 봉쇄할 경우에 예상되는 소비자 선택권의 제한이나 사업자의 경쟁의 자유 침해, 대량실업의 우려 등을 지적한 바 있다.

단말기 완전자급제 시행 이후 단말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들이 가격을 인하할 유인은 없으며, 결합판매의 금지에 따른 소비자의 불편비용 증가로 소비자 후생이 감소한다는 취지의 경제분석 결과도 있다(휴대폰 유통규제 도입으로 인한 소비자 후생효과 및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 이종수, 서울대 기술정책연구센터, 2018. 5.).

전세계적으로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법률로 강제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단말기 완전자급제의 효과가 현실에서 실증된 바도 전혀 없다.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관련 산업과 고용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규제로서 일단 도입한 후에 나타날 부작용은 비가역적이다. 국가경제와 국민을 상대로 그 효과가 전혀 검증되지 않은 완전자급제라는 ‘위험한 실험’이 중단되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