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탐지·유해물질 잡아내는 휴대용 '바이오나노 전자코' 나왔다
생체모방기술은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가 지닌 특별한 구조와 기능을 모방해 이용하는 기술이다. 말하자면 연잎 표면에 있는 미세돌기가 잎을 젖지 않게 하는 원리를 이용해 방수복을 만드는 기술이 생체모방 기술이다. 1990년대까지는 생체의 외형적 특징만 모방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인간의 오감에 대한 메커니즘이 밝혀지면서 생체 기능도 모방하는 기술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인간의 감각을 모방하는 기술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스마트폰을 들 수 있다. 스마트폰은 시각 모방으로 카메라를 통한 얼굴인식 기능, 청각 모방으로 마이크를 이용한 음성인식 기술, 촉각 모방으로 터치패드 기능 등을 담고 있다. 이처럼 한 제품에서 인간의 오감을 따라한 여러 기술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감각인 시각, 청각, 촉각에 대한 연구는 일찍부터 활발히 이뤄졌다. 그러나 후각과 미각 연구는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마약탐지·유해물질 잡아내는 휴대용 '바이오나노 전자코' 나왔다
◆1만가지 냄새 맡는 사람 코

후각은 생존에 매우 중요한 감각이다. 시각과 청각에 한계가 있으면 후각에 의존해 상황 판단을 내린다.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음식의 부패를 후각으로 알 수 있고 유독가스나 화재 등 위험을 감지하기도 한다.

인간의 후각은 다른 동물에 비해 퇴화했지만 여전히 오감 중 가장 민감하다. 시각은 세 종류의 수용체로 색을 구분하지만 후각은 약 400종의 수용체로 1만 가지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 후각 수용체는 코가 빨아들이는 냄새 분자와 결합해 냄새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단백질이다. 후각이 발달한 사람은 0.01ppb(10억분의 1) 농도의 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 공기 분자 100조 개 중 1개를 알아챌 수 있는 정도다. 인간은 지오스민(흙냄새를 내는 분자)에 민감해 0.005ppb의 농도를 감지하는데 이는 상어가 피 냄새에 민감한 정도보다 월등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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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냄새 맡는 ‘전자코’

최근 냄새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정 향기를 통해 그 향기와 연관된 과거 기억과 감정이 떠오르는 ‘프루스트 현상’을 이용해 냄새를 마케팅 도구로 활용한 ‘향기 마케팅’이나 냄새를 통해 심리·정서적 치료를 하는 ‘아로마테라피’ 등 다양한 방면에서 후각에 대한 가치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권오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선임연구원과 박태현·장정식 서울대 교수팀은 냄새를 감지하는 전자코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바이오나노 전자코를 제작하기 위해 그래핀, 탄소나노튜브 등 전도성 나노구조체를 사용했다. 물리·화학적으로 안정성이 높으면서 매우 높은 전자이동도를 가지고 있으며 현존하는 소재 중 특성이 가장 우수한 소재인 단일층 그래핀을 제작해 바이오나노 전자코에 적용했다. 그래핀과 후각 수용체를 화학적으로 결합해 후각 수용체가 안정적으로 고정된 바이오나노 전자코를 만들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휘어지는 기판에 그래핀을 접목한 바이오나노 전자코는 거치하거나 부착하지 않고 착용 가능해 다양하게 휴대할 수 있다. 이 바이오나노 전자코는 구부러져도 손상이 없으며 원형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다. 기존 전자코보다 외부 환경의 영향을 덜 받는다. 또 그래핀 표면을 특수 처리해 트랜지스터(일정 전압을 가하면 전원이 켜지는 부품)를 제작한 뒤 인체 후각 모사 수용체를 결합해 바나나와 살구 냄새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 연구진은 단일 냄새 분자만 검출하는 시스템을 넘어 더 확장된 다중 검출을 위한 바이오나노 전자코를 개발했다. 이 바이오나노 전자코는 한 개의 센서에 미세 그래핀 채널을 다중으로 제작하고 개별 채널에 각각 다른 인간 후각 모사 수용체를 결합해 수용체마다 다른 냄새 분자를 검출했다. 검출 대상인 바나나 및 살구향을 내는 분자와 상쾌한 바다향을 내는 분자가 각기 다른 그래핀 채널에서 신호를 보였다. 또 각 수용체에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냄새 분자 외에 반응하지 않는 바이오나노 전자코를 만들었다.

◆전자코가 마약 탐지견 대체할 수 있어

바이오나노 전자코는 산업적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마약 탐지견을 대체하는 마약 탐지 센서다. 마약 탐지견은 오랜 시간에 걸쳐 강도 높은 훈련 과정을 거쳐 약 30%만 선발되며 30분 동안 탐지한 뒤 1시간의 휴식이 필요하다. 마약 탐지용 전자코는 지속적인 탐지뿐 아니라 성능도 우수해 각국에서 대체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미국 기업 노마딕스는 지뢰 내의 화약물질 냄새를 파악해 탐지할 수 있는 전자코를 개발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비행사의 건강 관리를 위해 우주정거장 실내 공기 중 인체 유해물질을 감지하는 데 전자코를 사용하고 있다. 영국 맨체스터대는 쓰레기 매립장과 폐수처리시설에서 원격 전자코를 사용해 공기 중 배출되는 가스를 분석하고 관련 정보를 전송해 해당 지역 대기의 위험성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다. 영국 기업 페레스는 사람의 후각으로는 가늠하기 힘든 냄새는 물론 휘발성 유기화합물 외에 식품 주변 온도, 습도, 암모니아까지 측정 가능하다.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든 부패도와 신선도를 확인할 수 있는 전자코 기반의 부패 감지 센서를 시판했다. 이처럼 전자코는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으며 추후 그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