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파는 상비약 명단을 확대하려던 정부 계획이 또다시 미뤄졌다. 약사들의 반대 목소리에 막혀서다. 보건당국이 의사·약사 등 전문가 검토를 거쳐 최종 명단을 확정키로 하면서 품목 확대 시기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보건복지부는 8일 제6차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열고 편의점 상비약 명단을 논의했지만 합의를 이루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위원회 위원 상당수는 제산제와 지사제 효능을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했다. 하지만 약사들이 구체적인 품목을 정하는데 반대하면서 명단을 확정하지 못했다. 지난 5차 회의까지 위원들은 제산제 '겔포스'와 지사제 '스멕타'를 추가하는 방안에 합의를 이뤘지만 약사 측의 자해소동으로 명단 확정에 실패했다.

복지부는 "상비약 안전성 기준에 맞지 않는 의약품이 상비약 명단에 포함돼있다"는 약사들의 지적에 따라 의사·약사 등 전문가 검토를 받아 기준을 다시 정하기로 했다. 편의점 상비약 판매 확대와 이해관계가 없는 대한의학회, 대한약학회의 자문을 얻겠다는 계획이지만 약사들로 구성된 약학회에 자문을 얻는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이날 회의에서 약사들은 "타이레놀 500mg를 제외해야 한다"고도 요구했다. 이에 일부 위원들이 "타이레놀 성분이 문제라면 성분이 다른 애드빌(성분명 이부프로펜)을 추가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격론이 펼쳐진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약국과 병원이 문 닫은 시간에 국민의 약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2012년 11월부터 편의점에서 가정용 상비약을 판매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타이레놀, 판콜에이, 판피린 등 13개 의약품을 24시간 편의점에서 살 수 있다. 지난해 복지부는 제도 시행 5년을 맞아 상비약 품목 조정을 위한 심의위를 꾸려 품목 확대 방안을 논의해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이달초 시민 174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상비약 품목을 확대해야 한다는 답변이 86.8%(1515명)이었다. 현행 수준 유지는 9.9%(173명), 현행보다 축소는 1.7%(29명)로 조사됐다.

또 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제도 필요성에 대해서는 97%(1693명)가 공감한다고 답했다. 편의점에서 상비약을 구매하는 이유로는 공휴일, 심야 등 약국 이용이 불가능할 때가 74.6%(1179명)로 나타났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