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창업' 42년 만에 애플, '꿈의 시총' 1조달러 돌파
“애플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2010년 6월 미국에서 열린 한 테크 콘퍼런스에서 꺼낸 얘기다. 아이폰의 성공으로 이미 글로벌 시장을 이끄는 정보기술(IT) 업체로 성장했지만 잡스는 “애플은 위원회를 두지 않는다”며 “애플의 조직 구조는 스타트업 같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대 스타트업’ 애플이 미국 뉴욕증시에서 시가총액 1조달러(약 1129조원)를 넘어섰다.

끝없는 혁신의 힘

'창고 창업' 42년 만에 애플, '꿈의 시총' 1조달러 돌파
애플 주식은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에서 전날보다 2.92% 오른 207.39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1조17억달러였다. 이로써 애플은 미국 상장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꿈의 시총’ 1조달러를 넘어섰다. 1976년 창업한 이후 42년, 1980년 기업공개(IPO) 이후 38년 만에 달성한 대기록이다. 세계 시장에선 중국 국유석유회사 페트로차이나가 2007년 한때 1조달러를 넘어선 적이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이 고지를 밟지 못했다.

지난달 31일 발표된 애플의 2분기(미국 회계연도 3분기) 실적이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영향이 컸다. 애플은 2분기 매출 533억달러(약 59조6000억원), 순이익 115억달러(약 12조8600억원)를 기록해 월가 예상치를 모두 뛰어넘었다. 특히 주당 순이익(EPS)은 2.34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0.1% 증가했다.

애플은 그동안 아마존, 알파벳(구글 모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다른 IT 기업들과 ‘꿈의 시총’ 경쟁을 펼쳐왔지만 가장 먼저 1조달러 고지를 밟았다. 2일 종가 기준 주요 기업의 시총은 아마존 8946억달러, 알파벳 8524억달러, MS 8264억달러, 페이스북 5092억달러로 미국 뉴욕증시 시총 1~5위를 모두 IT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창고 창업' 42년 만에 애플, '꿈의 시총' 1조달러 돌파
비전 내놓은 잡스, 사업 다각화한 쿡

애플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창업자인 잡스와 현재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이다. 잡스가 애플의 비전과 혁신을 이뤄냈다면 쿡은 제품 제조·판매 방식을 개편해 애플의 성장세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잡스는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1976년 애플을 설립해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I을 개발했다. 애플Ⅱ와 매킨토시 등 후속작이 잇따라 성공하면서 IT업계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잡스의 성공 비결은 혁신이었다. 1980년대 그래픽 사용자 환경(GUI)을 처음 도입해 MS의 운영체제 DOS와 차별화했다. 1985년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1997년 복귀한 뒤 처음 내놓은 제품도 빨간색, 파란색 등 원색을 적용한 올인원 데스크톱 ‘아이맥’이었다. “컴퓨터는 무채색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2007년 등장해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한 아이폰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감압식 터치 방식을 사용할 때 정전식 터치 방식을 썼다. 두 손가락을 이용해 화면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등 직관적 인터페이스를 처음 도입했다.

혁신의 상징이던 잡스가 2011년 10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최고운영책임자(COO)이던 쿡이 CEO를 맡았다. 공급망관리(SCM) 전문가로 알려졌던 쿡이 잡스의 뒤를 잇게 되면서 우려하는 의견도 많았지만 애플은 오히려 고성장의 길을 걸었다. 제품 라인업을 다양화하고 고급화 전략을 구사하면서 2011년 3460억달러이던 시총 규모를 7년 만에 세 배 이상으로 키워냈다. 쿡은 애플의 시총 1조달러 달성 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시총 1조달러 달성은 중요한 이정표이며 자랑스러운 일”이라면서도 “재정적인 부분은 애플 혁신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했다.

혁신 계속될까

거듭된 혁신으로 성장해온 애플이지만 성장이 계속될 것인지 의문도 제기된다. 가장 싼 모델이 1000달러 이상인 아이폰X(텐)이 많이 팔린 덕분에 지난 2분기 순이익이 115억달러로 2분기 기준 최고 성과를 냈지만 판매량은 4130만 대로 전년 동기(4100만 대)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화웨이에 2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시총 1조달러를 달성한 애플은 새로운 히트 제품을 개발하라는 압력을 더 크게 받을 것”이라며 “애플의 혁신이 계속될지 시험하는 첫 관문은 다음달 공개할 새로운 아이폰의 성공 여부”라고 분석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