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스마트폰의 평균가격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0일 '스마트초이스'를 통해 중고폰 시세조회 서비스를 개시하면서부터다. 이 서비스는 중고폰 37종의 가격을 제공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갤럭시S9', 애플 '아이폰X', LG전자 'G7 씽큐' 등 최신 제품들은 빠졌다.

정부는 시세조회 서비스가 중고폰을 구매하려는 소비자의 탐색비용을 낮추고 거래를 활성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포털에 공개된 중고폰 가격 정보는 없느니만 못했다. 거의 모든 기종들이 실제 중고 거래가격보다 현격히 높았다. '누가 저 가격에 살까' 싶을 정도로 듣도 보도 못한 가격이다.
스마트초이스의 중고폰 시세조회 서비스.
스마트초이스의 중고폰 시세조회 서비스.
개시 당일 스마트초이스 중고폰 시세조회에 따르면 삼성전자 갤럭시노트8(64GB) 최고등급의 평균가격은 73만4500원이다. 실제 거래가격과 무려 13만원~20만원정도 차이가 난다. 현재 갤노트8(64GB)는 온라인 중고거래 커뮤니티 '중고나라'에서 52만원~6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오프라인 판매점도 같은 제품을 50만원 수준에 매입해 55만원~60만원에 팔고 있다.

다른 플래그십 제품도 갤노트8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애플 아이폰8(64GB)은 최저등급 평균 62만5000원부터 최고등급 평균 69만5000원으로 산정됐는데, 이 역시 실제 거래가격과 10만원 이상의 격차를 보인다.

정부는 시세 조회 서비스를 통해 투명한 가격을 공개하면 고객이 '호갱(이용당하기 쉬운 고객)'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봤다. 소비자들이 대략적인 판매 시세를 먼저 확인하면 합리적인 거래를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하지만 시세 조회 서비스는 정부의 의도와 반대로 오히려 호갱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사전 정보가 없는 소비자가 스마트초이스 고시 가격을 기준으로 삼아 중고폰을 산다고 치자. 시세보다 높게 책정된 가격이 머릿 속에 있으니 실제 시장 가격보다 더 비싸게 살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 호갱이 70만원대로 공시된 갤노트8을 65만원에 산 후 만족하는 그림이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스마트초이스 사이트 개시당일 오프라인 판매점의 중고폰 매입단가.
스마트초이스 사이트 개시당일 오프라인 판매점의 중고폰 매입단가.
스마트초이스 사이트는 개시 당일 접속이 폭주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아무래도 정부가 직접 만든 사이트다 보니 신뢰를 갖는 이들이 적지 않았을테다. 그러나 인기도 잠시. 사이트를 둘러본 소비자들의 실망감은 곧장 온라인으로 이어졌다. 대부분이 실제 거래가격과 괴리가 큰 시세 조회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럼 이토록 현실적이지 않은 시세는 어디서, 어떻게 나온걸까. 정부는 정보 제공에 동의한 중고폰 업체 10곳의 판매 가격을 반영했다. 업체별로 중고폰의 등급을 나누는 기준이 다른데도 일괄적으로 가격의 평균값을 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셈이다.

설령 기준이 같다고 해도 고작 10개 업체의 정보로 서비스를 개시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불가다. 당연히 사이트를 열기 전 온·오프라인, 지역 가릴 것 없이 되도록 많은 업체들의 가격 데이터를 확보했어야 했다. 정부는 추가로 정보 제공에 참여하려는 업체의 신청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온오프라인의 가격 데이터를 반영하지 않는 이상 향후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시세 정보가 2주에 한 번 반영된다는 점도 문제다. 실효성이 없다. 중고거래 커뮤니티나 오프라인 판매점의 경우 중고폰 가격 시세를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실제로 중고폰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기 때문에 2주는 너무 긴 간격이다. 소비자들의 중고폰 구매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단 얘기다.

중고폰 거래는 쓰던 물건을 되파는 방식으로, 개인 간 거래가 주를 이룬다. 개인 간 합의만 있으면 어떤 가격으로든 거래가 가능하다. 판매자와 거래자들은 스스로 시장 가격을 형성해왔고 심리적 가이드라인도 있다. 굳이 정부가 투명성을 앞세워 가격 책정에 개입할 필요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준비도 없이 말이다.

이럴바엔 차라리 거래 당사자들에게 중고폰 가격을 맡기는 편이 낫다. '보편요금제', '단말기 완전자급제' 등 꺼내는 카드마다 "물정을 모른다"고 비아냥을 받은 통신 정책에 중고폰 가격공시까지 더할게 아니라면.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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