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1, 2위 스마트폰 제조회사인 삼성전자와 애플이 맞붙은 특허분쟁이 7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양사는 모든 소송을 취하하고 같은 사안에 대해 추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전격 합의했다. 엎치락뒤치락 장기화하는 소송전에 적잖은 부담을 느낀 두 회사가 서로 명분을 챙기는 선에서 한발씩 물러났다는 평가다.

5년째 표류 중인 서울 상암동 롯데몰 조감도.
5년째 표류 중인 서울 상암동 롯데몰 조감도.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은 2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연방지방법원에 제출된 소송 자료를 인용해 삼성전자와 애플이 스마트폰 디자인 특허분쟁을 해결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합의 조건은 이 소송 자료에 명시되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디자인 특허분쟁은 애플이 2011년 4월 삼성전자가 자사의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장을 내면서 시작됐다. 애플이 주장한 특허는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낸 아이폰 기본 디자인, 액정화면 테두리, 앱(응용프로그램) 배열 형태(아이콘 그리드) 등이다. 삼성은 여기에 맞서 아이폰, 아이패드가 자사의 통신표준 특허를 침해했다며 맞소송을 냈고 소송전은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대륙으로 번졌다. 2014년 8월 양사는 미국 소송 2건을 남기고 나머지 소송을 철회해 한때 합의가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이번 최종 합의까지 4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미국에서 제기된 첫 소송과 관련 1심 법원은 2014년 3월 9억3000만달러의 배상금을 부과했지만 이듬해 항소법원에선 배상금이 5억4800만달러로 줄었다. 작년 12월 미 대법원은 1·2심을 통해 결정된 배상금 산정 방식에 불복한 삼성전자의 상고를 받아들여 해당 사건을 하급법원(파기환송)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으로 진행된 지난달 1심 재판에선 배심원단이 5억3900만달러의 배상금을 평결했다.

이 배심원 평결 이후 업계 일각에선 삼성과 애플이 소송 종결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흘러나왔고 불과 한 달여 만에 ‘깜짝 합의’가 이뤄졌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모두 이번 합의와 관련해 말을 아끼고 있다. 삼성전자 측은 “애플과 합의했다는 사실 외에는 확인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밝혔다.

두 회사의 소송 종결 결정을 두고 업계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우선 7년간 누적된 소송 피로감이 두 회사를 협상 테이블로 이끈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더버지는 “애플이 강조했듯이 돈 문제가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며 “향후 소송에 몇 년이 더 걸릴지 우려한 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두 회사 모두 소송을 더 끌었을 때 챙길 수 있는 실리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7년간 치고받는 법정 공방이 이어지며 각사 입장에서 예기치 못한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며 “두 회사 모두 공격과 방어의 적정한 균형이 이뤄진 지금이 소송을 끝낼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된 데다 두 회사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중국 스마트폰 업체에 대한 위기감 역시 이번 합의에 이르게 한 요인 중 하나다. 두 회사 간 소모적인 소송전이 계속되는 사이 중국 회사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약진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22.6%)와 애플(15.1%)에 이어 3~5위를 모두 중국 업체가 차지했다. 화웨이(11.4%) 샤오미(8.2%) 오포(7.0%) 순이다. 중국 3사의 점유율을 합치면 26.6%로 삼성전자보다 높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