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프런티어

인터뷰 - 고진업 테라젠이텍스 부회장

냉차 장사꾼에서 CEO로
부친의 사업 실패로 생활고
"꼭 사업 해야겠다" 다짐
창호약품 설립 의약품 유통나서

바이오가 미래 성장동력
맞춤의학시대 핵심 '유전체 분석'
2009년 유전체 연구소 설립
국내 1위 분석 실적 보유

글로벌 항암제 시장 공략
2012년 신약 '벡토서팁' 개발 시작
美서 임상 1·2상…내년 결과
"실적 본격 궤도 오를 것"
고진업 "韓 최초 인간 유전체 지도 구축… 파스퇴르 같은 종합 바이오기업 될 것"

“돈을 어느 정도 벌고 나니 돈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일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때 미국 국립보건원(NIH) 종신 수석연구원이던 김성진 부회장이 후손들에게 바통을 넘겨줄 수 있는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이상의 회사를 세우자고 제안했고, 의기투합해 바이오연구소를 설립했죠.”

경기 수원 테라젠이텍스(8,340 +1.34%) 바이오연구소에서 최근 만난 고진업 부회장(사진)은 테라젠이텍스를 국가와 인류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테라젠이텍스는 제약 사업 기반 아래 유전체 분석, 신약 개발,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등 종합 제약·바이오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고진업 "韓 최초 인간 유전체 지도 구축… 파스퇴르 같은 종합 바이오기업 될 것"

냉차 장사서 1천억원대 기업 CEO로

고 부회장은 어려서부터 장사를 했다. 아버지의 표고버섯 사업이 실패하면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처지였다. 중학교 1학년 때는 동네 대학생 형들을 따라 부산에서 냉차를 팔았다. 안양에서는 상자에 얼음과 음료수를 넣고 다니며 장사했다. 사흘을 굶은 적도 있고, 깡패들에게 실신할 정도로 얻어맞기도 했다.

이런저런 고난이 많았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는 항상 다른 동료보다 배 이상의 이문을 남겼다. “나는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다.

고 부회장은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와 제일공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의약품 유통기업이던 대양약품에 입사해 의약업계 생활을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약을 배달하던 시절이었다. 몇 년 만에 자전거가 자동차로 바뀌었다. 하루 20시간씩 일한 결과였다. 제약회사를 세우자는 목표가 생겼다. 1987년 테라젠이텍스의 전신인 창호약품을 설립해 의약품 유통에 뛰어들었다.

의약품 유통 사업은 녹록지 않았다. 그야말로 ‘레드오션’이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고 부회장은 다른 제약사에는 없는 독점 품목을 확보하고 전국 약국을 상대로 제약 영업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하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의약분업 도입을 앞두고 위기를 느낀 고 부회장은 1997년 전국 대형약국을 주주로 끌어모아 약국체인 및 의약품 유통 전문업체인 리드팜(옛 진업약품)을 설립하며 사업을 확대했다.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변화를 이어갔다. 부산에서 냉차를 팔던 소년은 매출 1000억원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테라젠이텍스는 지난해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107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고 부회장은 “공부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카네기 인생론 전집을 독파하는 등 책을 많이 읽었다”며 “선택과 결단의 순간에 얻은 주변 사람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고진업 "韓 최초 인간 유전체 지도 구축… 파스퇴르 같은 종합 바이오기업 될 것"

“유전체 사업은 자손 만대 먹거리”

고 부회장은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에 제약·바이오 사업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2000년대 초반 정밀의료와 맞춤의학이 미래 의학의 주요 화두로 대두되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2005년 코스닥 상장사이자 공장자동화 설비업체 에쎌텍을 인수하고, 2007년에는 전문의약품 중심 제약사인 이텍스제약을 사들였다. 두 회사를 합병해 테라젠이텍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바이오 분야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미래 사업을 해야 한다”는 고 부회장의 생각에 기름을 부은 것이 김 부회장이다. 김 부회장이 2009년 투자자로 테라젠이텍스에 합류하면서 유전체 분석 및 이를 활용한 신약개발 사업을 구상할 수 있었다.

김 부회장과의 인연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고 부회장이 가족과 떨어져 기러기 생활을 할 때였다. NIH에서 일하던 김 부회장이 집을 찾아와 컴퓨터도 조립해주고, 전등도 갈아줬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김 부회장은 고 부회장을 만나 “자손 만대의 먹거리를 만들 수 있는 첨단산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고 부회장은 맞춤의학 시대에 가장 유망하고 필요한 분야가 유전체 분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개인의 특성에 맞춘 의료를 위해서는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2009년 9월 테라젠유전체바이오연구소를 설립했다. 테라젠이텍스는 국내 최초로 인간 유전체 지도를 완성하고 세계 최초로 호랑이, 복제 개, 밍크고래 등의 유전체 지도를 규명했다. 개인 유전체 분석 서비스인 ‘헬로진’과 ‘진스타일’ 등도 내놨다. 최근에는 형질을 전환한 부모 소 사이에서 태어난 송아지의 유전체를 분석해 전환한 형질만이 송아지에게 유전된다는 것을 국내 최초로 확인했다.

600억원 이상을 투자해 기술력을 쌓은 유전체 분석 서비스 사업은 최근 성장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최근 3년간 매출이 연평균 45% 이상 증가해 지난해 19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순이익도 3억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흑자를 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환자 유전체 분석 실적을 보유하고 있는 테라젠이텍스는 빅데이터를 항암 치료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의 국내 특허를 취득하기도 했다. 고 부회장은 “앞으로 유전체 분석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는 생수 하나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유전체 분석 기술력을 토대로 유전체 빅데이터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드마켓은 세계 유전체 관련 시장이 2012년 2조8000억원에서 매년 17% 이상 성장해 2021년 1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항암 신약 ‘벡토서팁’ 개발 본격화

2012년에는 글로벌 항암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고 부회장은 “당시 매출 기복이 크고 이익도 많지 않았다”면서도 “무리를 하더라도 테라젠이텍스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신약 연구에 도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2013년 항암제 신약 ‘벡토서팁’ 개발을 주도할 자회사 메드팩토를 세웠다. 개발이 순항하면서 메드팩토는 세계가 주목하는 신약개발사가 됐다. 메드팩토는 이달 초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벡토서팁의 임상 1상 결과를 발표했다.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안전성을 확인했다. 또 비임상실험에서 면역관문억제제와 함께 사용할 때 효과가 높아진다는 점도 입증했다.

메드팩토는 현재 미국에서 골수이형성증에 대한 임상 1·2상과 다발성골수증에 대한 연구자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골수이형성증 관련 임상 결과가 내년에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위암에 대한 임상 1b·2a상과 췌장암에 대한 연구자임상을 하고 있다. 해외 기술수출도 추진 중이다.

고 부회장은 “올해는 테라젠이텍스와 자회사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유전체 분석 사업의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고, 리드팜은 전국의 병원과 약국을 대상으로 유통망을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위탁 중인 유전체 분석 서비스 영업은 직접 진행할 계획이다. 메드팩토는 신약후보물질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계열사 연구소들의 공통적인 영역을 모은 중앙연구소를 설립해 효율적인 연구 성과를 내겠다는 중장기 계획도 갖고 있다.

고 부회장은 사업을 일군 비결로 근면과 성실, 신뢰를 꼽았다. 그는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일을 맡긴다. 테라젠이텍스가 3명의 각자대표체제로 운영되는 배경이다. 국내에 테라젠이텍스와 4개 계열사가 있지만 고 부회장이 상주하는 개인 사무실은 없다. 공간이 있다면 대신 회의실이나 직원 휴게실로 쓰도록 했다. 고 부회장은 “진단부터 예방, 치료까지 의료의 모든 분야에서 각 사업부 및 자회사 간에 유기적인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며 “맞춤의학 시대에 걸맞은 대표 제약·바이오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한민수 기자 hm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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