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소프트웨어(SW) 수업을 듣고 있다. 내년부터 초등학교에서 의무화되는 SW교육 시수는 17시간으로, 6년(5892시간) 교육과정의 0.2% 수준에 불과하다. /한경DB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소프트웨어(SW) 수업을 듣고 있다. 내년부터 초등학교에서 의무화되는 SW교육 시수는 17시간으로, 6년(5892시간) 교육과정의 0.2% 수준에 불과하다. /한경DB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최근 학부모 참관수업을 창의융합교육 방식으로 준비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요새 학부모 사이에서 창의융합교육이 화두라는데 학교에서도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교무부장 지시에 ‘벼락치기’로 수업을 준비했다. A씨가 준비한 건 ‘페트병으로 에어로켓 만들기’ 창의융합수업. 하지만 과학수업에 억지로 예술 요소를 짜맞추려다 보니 페트병 색칠에 노래 부르기 시간까지 수업 진행은 산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결국 “도대체 뭘 가르치려는지 모르겠다”는 혹평만 돌아왔다.

◆겉도는 창의융합교육

美 '융합교육' 유치원 때 해도 늦다는데… 韓은 참관수업 때만 '벼락치기'
정부가 창의융합교육 활성화에 팔을 걷어붙인 지 7년이 지났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창의융합교육 개념과 방식을 두고 혼란을 겪고 있다. 2011년 교육부는 ‘스팀(STEAM)’ 교육을 도입했다. 스팀은 과학, 기술, 공학, 수학을 통합적으로 가르치는 미국의 ‘스템(STEM)’에 예술(Art)을 접목한 개념이다. 실생활과 접목한 교육, 과목 간 결합을 통해 수학 과학 등 기초학문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도를 높이기 위한 취지다. 미국이 10여 년 전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미국 학생들의 낮은 과학 수학 성취도의 원인은 낮은 흥미도에 있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K-12)까지 여러 학문을 융합해 교육해야 한다’며 스템 강화 정책을 펼친 게 자극제가 됐다.

하지만 국내 창의융합교육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올해 교육부와 창의교육재단이 운영 중인 스팀 연구·선도학교는 103개로 전체 초·중·고교의 1% 미만이다.

과목별 교사가 다른 중학교에서는 창의융합교육을 컴퓨터·정보 등 특정 과목만의 이슈로 치부하기도 한다. 올해부터 시작되는 소프트웨어(SW)교육 의무화는 오히려 과목 간 칸막이를 더욱 강화했다.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올해 중학교 정보 시간에 34시간의 SW교육이 의무화됐다. 초등학교에서는 내년부터 5~6학년을 대상으로 17시간 이상 SW교육을 할 예정이다. 서울의 한 중학교 정보교사는 사회, 과학 등 다른 과목과 융합수업을 하기 위해 다른 교과 교사들과 의논했다가 ‘같은 과목 교사끼리 시험 진도 맞추기도 버겁다’는 답을 들었다. 이 교사는 “SW교육의 취지는 ‘생각언어’ ‘문제해결 중심 사고’를 길러주기 위한 것”이라며 “컴퓨터 시간에만 SW교육이 갇히면 자칫 코딩기술만 가르치고 끝날까 걱정”이라고 했다.

◆한국 학생, 과학 수학 실력 나날이 추락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 학생들은 성적만 높고 흥미도가 낮다’는 것도 이제 옛말이다. 세계 상위권 수준이던 수학 과학 과목의 성취도마저 추락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년마다 시행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2000년 수학 3위, 과학 1위를 차지했던 한국 학생들은 2015년에는 수학 6~9위, 과학 9~14위를 기록했다.

수학 과학에 대한 낮은 흥미가 원인으로 꼽힌다. 한 고교 물리 교사는 “교실에서는 이미 ‘수포자(수학 포기자)’ ‘과포자(과학 포기자)’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며 “그나마 이공계 진학을 꿈꾸며 과학 공부를 놓지 않는 학생들도 흥미가 아니라 높은 등급을 받기 유리한지를 기준으로 과목을 골라 공부한다”고 말했다.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의회(IEA)에 따르면 한국 학생의 수학 과학에 대한 자신감과 흥미는 최하위권이다.

◆해외에선 교육 전반에 활용

전문가들은 국내 창의융합교육의 양적·질적 측면을 모두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초등학교 SW교육 시수는 6년(5892시간) 교육과정의 0.2%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의 전 교육과정에 스템 개념을 도입했다. 그럼에도 미국 네바다주 교육정책 전문가들은 최근 네바다주 의회에 ‘조기 스템 교육 지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탐구하고 상호작용하고 관찰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유치원 이전의 유아기부터 시작된다”며 “유치원에 들어가서 스템 교육을 하면 너무 늦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융합교육을 특정 과목에 가두는 대신에 교육 전반에 활용 중이다. 적정기술을 활용해 개발도상국가들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영국의 비영리기관 프랙티컬 액션(Practical Action)은 학교들과 협업해 ‘스템 챌린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예컨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나무 땔감을 쓰는 저개발국가 부엌을 소개해주고 그것을 현실적으로 개선할 방법을 고안하도록 하는 것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