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루미르는 폐식용유를 활용해 LED(발광다이오드) 램프를 켤 수 있는 ‘루미르K’라는 제품을 지난해 개발해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남쪽 칼리만탄 지역에 공급했다. 이 회사는 앞서 양초 한 개의 열로 양초의 60배 이상 밝은 빛을 내는 램프를 선보이기도 했다. 열을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다. 성질이 다른 도체의 온도 차이가 전기를 발생시키는 ‘제베크(Seebeck) 효과’를 활용했다.

박제환 루미르 대표는 “열악한 전기시설 탓에 만성적인 빛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세계 13억 명의 사람들에게 빛을 주고 싶었다”며 “인도 여행을 하면서 개발도상국의 부족한 전력 문제를 느끼고 창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로 동남아시아·남미·아프리카 등지에서 지구촌을 밝히는 국내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이들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기술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혁신적 기술 솔루션(CTS)’ 등과 연계해 자금 지원을 받으며 사업을 키우고 있다.
[스타트업 리포트] 개도국서 혁신기술 불 밝히는 'K스타트업'
개도국 교육 시장 혁신한다

교육 스타트업 에누마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의 언어·수학 교육과정을 담은 태블릿PC 앱(응용프로그램) ‘킷킷스쿨’을 선보였다. 아프리카 학생들은 말로만 언어를 배우다 보니 글과 소리를 연결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데 주목했다. 이수민 에누마 대표는 “태블릿PC의 사용자환경(UI)을 새롭게 디자인해 아이들이 쉽게 글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며 “알파벳을 모래 위에 쓰게 한다거나 잔디 위에 놓인 돌의 숫자를 세게 하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에누마는 세계 최대 비영리 벤처재단인 엑스(X)프라이즈의 스타트업 경진대회인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결승에도 진출했다. 엑스프라이즈는 달나라 여행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에 도전하는 경진대회로 유명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스페이스X 프로젝트도 엑스프라이즈가 출발점이었다.

제3세계 시각장애인 교육에 주목한 한국 스타트업도 있다. 넥스트이노베이션은 활동 무대가 엘살바도르다. 이 회사는 PC에서 일반문서를 점자파일 문서로 빠르게 변환하는 솔루션과 이 문서를 출력할 수 있는 점자프린터를 개발했다.

서인식 넥스트이노베이션 대표는 “우리가 개발한 점자책 변환 시스템(SENSEE)은 일반적인 책 한 권 분량의 문서를 약 30초 만에 점자파일로 전환한다”며 “하루 안에 점자도서를 제작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점자도서 출판은 페이지에 요철을 만드는 방식으로 제작 기간만 6개월 넘게 걸렸다.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맹활약

헬스케어 스타트업 제윤은 모로코에서 결핵 퇴치 활동을 하고 있다. 결핵 치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초기 치료다.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완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모로코에서는 환자의 약 복용률이 크게 떨어져 결핵 재발률이 높다.

제윤이 개발한 ‘스마트 약상자’는 결핵 환자에게 치료약 복용 시기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게 특징이다. 현지 주민의 반응도 좋다. 기존에는 결핵 치료율이 85% 수준이었으나 제윤의 약상자를 사용한 이들은 치료율이 97%에 달했다. 모로코 탕헤르 주정부는 지난해 약 2억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공적개발원조(ODA)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국 기업이 원조 대상 국가에서 지원받은 첫 사례다.

동남아에서 숲을 가꾸는 한국 스타트업도 있다. 트리플래닛은 네팔 히말라야 지역에서 커피나무 숲을 조성하고 있다. 나무를 심는 일이 단순히 환경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현지 농부에게도 도움이 돼서다. 트리플래닛은 커피 가공센터를 건립하고, 현지 아이들을 위한 학교 도서관과 운동장을 짓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미경 KOICA 이사장은 “글로벌 ODA 시장은 연 220조원에 달한다”며 “국내 스타트업들이 활발히 참여해 성과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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