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브레이크스루상 시상식에서 윌킨슨마이크로파관측위성(WMAP) 실험으로 기초물리학상을 받은 찰스 베넷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앞줄 맨 오른쪽)가 동료 연구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감을 말하고 있다. 브레이크스루상재단 제공
지난해 12월 브레이크스루상 시상식에서 윌킨슨마이크로파관측위성(WMAP) 실험으로 기초물리학상을 받은 찰스 베넷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앞줄 맨 오른쪽)가 동료 연구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감을 말하고 있다. 브레이크스루상재단 제공
“뛰어난 과학자의 업적을 축하하는 건 언제나 필요합니다. 모든 미래는 그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죠.”

러시아 벤처투자자 유리 밀너는 지난해 1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브레이크스루상 시상식에서 혁신적 연구에 열정을 바친 수상자들을 이렇게 치켜세웠다. 브레이크스루상은 소셜미디어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투자해 큰돈을 번 밀너가 아이디어를 내 제정됐다. 기초과학 분야의 획기적 성과를 응원하자는 취지에서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아내 프리실라 챈,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그의 전 아내이자 23앤드미 창업자인 앤 위치츠카, 마화텅 중국 텐센트 회장 등이 거금을 내놨다.

과학자 연구의욕 북돋는 민간

영어단어 돌파(breakthrough)에서 이름을 따온 브레이크스루상은 2012년부터 기초물리학상 생명과학상을 차례로 제정하고 과학의 지형을 바꾼 혁신적 연구를 한 과학자에게 주고 있다. ‘과학의 아카데미상’ ‘실리콘밸리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 상은 수상자 한 명에게 돌아가는 상금이 최대 300만달러(약 32억원)로 노벨상 상금의 세 배에 가깝다.

물리학과 생명과학 분야에서 광범위한 진보를 이룬 과학자, 수학 분야에서 획기적 성과를 낸 수학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중력파 연구자와 유령입자로 알려진 중성미자 검출에 이바지한 과학자 등이 브레이크스루상을 받았다.

이 상을 운영하는 브레이크스루상재단은 ‘브레이크스루 이니셔티브’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인류의 상상력을 태양계 바깥으로 확장하는 네 가지 획기적인 연구도 지원하고 있다.

최근 타계한 영국의 천재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케임브리지대 교수, 밀너, 저커버그 주도로 2016년 출범한 ‘브레이크스루 스타샷 프로젝트’가 그중 하나다. 3만 년 걸리는 우주 항해를 20년 만에 주파하는 우주돛단배를 건조하는 1억달러 규모 프로젝트다.

브레이크스루상재단은 가장 가까운 외계 행성을 찾는 ‘브레이크스루 워치’, 태양계 바깥에서 지적생명체의 소리를 듣는 ‘브레이크스루 리슨’, 외계 생명체에게 지구를 대표할 정보를 담아 전해줄 메시지를 설계하는 ‘브레이크스루 메시지’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저커버그·브린… 실리콘밸리 부자들 '문샷 싱킹'에 수십억弗 투자
늘어나는 기업인 후원자

해외에서는 한계를 돌파하는 연구를 지원하는 민간 투자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저커버그와 챈은 지난해 생물 의학연구에 30억달러를 내겠다는 약속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 역시 생명과학 연구에 1억달러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세계적인 펀드매니저로 활동한 뒤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제임스 사이먼스 르네상스테크놀로지 명예회장 부부는 2016년 글로벌 유전체(게놈) 연구 중심지 뉴욕게놈센터에 1억달러를 기부했다. 뉴욕게놈센터는 신경교아세포종, 소아암, 류머티즘관절염, 자폐증 분야에서 700개가 넘는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부부의 기부금은 게놈 연구자와 임상의사의 연구를 지원해 뉴욕을 유전자치료 메카로 조성하는 사업에 활용될 예정이다.

미국 숀파커재단과 영국 웰컴트러스트도 생명과학, 의학 연구자를 지원하는 대표적 민간 재단으로 꼽힌다. 음원 공유 서비스업체 냅스터의 창업자인 숀 파커가 설립한 숀파커재단은 암 연구에 2억5000만달러를 기부했다. 웰컴트러스트도 5년간 50억파운드를 암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원 재단 생겨나

한국에서도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민간 재단이 드물게 출범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2013년 설립한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은 수리과학, 물리, 화학, 생명과학 분야 과학자를 지원하고 있다.

기존에 있던 이론을 검증하는 연구와 이미 다른 과학자들이 성과를 낸 연구는 지원 대상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새로운 과학현상의 발견, 새로운 과학원리의 이론적 규명, 난제를 해결한 기초연구에 한정된다.

이 재단은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139개 과제를 냈다. 올해는 1차로 10개 신규 기초과학 연구과제를 선정했다. 이상성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제안한 우주에서 가장 먼 거리 천체 측정, 강정수 서울대 교수가 제안한 사교기하학의 블록성 연구 등이 뽑혔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서경배과학재단을 세웠다. 지난해부터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난제로 남아있는 생명현상을 연구해 기존 한계를 넘어설 연구자를 선정한다. 해마다 3~5명씩 뽑아 5년간 최대 25억원을 지원한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