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는 R&D에 달아주는 날개…돈 되는 지식재산 창출할 것"

실물경제 배우려 산업부 선택
정부 주도로 수출 정책 펴던 80년대
WTO 가입 후 민간 주도로 바뀌어

기업의 경쟁력 키우는 데 전념
'산학협력' 개념조차 없던 시절
기업에 대학과 R&D 해보자 설득
인재교류 물꼬 트며 협력모델 조성

특허정책이 산업 경쟁력 좌우
한국은 세계 4위 산업재산권 국가
지식재산권 무역수지는 적자

"특허 행정시스템 UAE에 수출
그 돈으로 벤처기업 성장 지원"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성윤모 특허청장(55)은 소통 능력과 기획력을 갖춘 산업기술정책 전문가로 통한다. 일 얘기를 할 때는 거침이 없지만 개인사를 말할 땐 소박하고 상냥한 학교 선배 같은 인상을 준다. 오랜 공직생활에서 몸에 밴 특유의 진지함이나 권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늘 상대방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공무원 후배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텁다. 30년 공직생활 3분의 1을 해외와 청와대, 국무총리실 등 다른 정부기관을 돌며 쌓은 균형감이 원천이라는 평가가 많다.

지난 1일 낮 대전의 구도심 골목에 있는 토속음식점 탑집에서 성 청장을 만났다. 그는 지난해 7월 특허청장에 취임한 뒤 “진짜 돈이 되는 강한 지식재산을 창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세금에만 의존하지 않는, 돈을 버는 행정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돈으로 지식재산 취약층인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자의 성장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실물경제 알고파 공직 입문

성 청장은 음식이 상 위에 차려지자 탑집과 맺은 인연을 소개했다. 부근에서 중고교를 다녔지만 이런 집이 있는지 잘 몰랐다고 했다.

“공무원이 된 뒤 바빠서 한동안 친구들을 못 만나다가 특허청장으로 취임하면서 우연히 이 집을 알게 됐어요. 이곳에서 간간이 친구들과 지인을 만나곤 합니다. 옛 도심의 정취가 남아 있고 소박한 음식을 먹으며 추억도 되살릴 수 있어서 편합니다. 전임 청장들도 자주 찾은 맛집이라고 하더라고요.”

학창시절 얘기가 나오자 성 청장은 꿈을 포기했던 ‘과거사’를 털어놨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인 그는 공부를 계속해서 연구자 또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

“당시 서울대에는 임원택 명예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임 교수님은 경제사상사를 가르치셨는데 훗날 실물경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교수님은 애덤 스미스부터 카를 마르크스 같은 사상가를 아우른 《제2자본론》을 내며 깊이 있는 연구를 하셨죠. 저는 수업을 들으며 ‘아, 나는 도저히 못 따라가겠구나’ 하고 연구자나 교수의 꿈을 포기했습니다.”

성 청장은 청포묵으로 입맛을 돋웠다. 술술 풀어놓는 공직생활 스토리엔 자부심이 차고 넘쳤다. 산업정책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옛 상공부) 일이 자신과 가장 맞았다고 했다.

“상공부에 들어가서 산업기술과에서 주무 업무를 맡았어요. 당시 난리였습니다. 1980년대 후반을 거쳐 1990년대 초 더는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펴기가 어려웠습니다.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특정 산업이나 기술을 지원하기가 사실상 어려워졌어요. 상품을 직접 수출하기보다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연구개발(R&D)을 진흥하는 기술 드라이브로 정책을 바꾸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그는 이때가 공직생활 중 가장 신났던 시기라고 되돌아봤다. “부처에는 산업기술 정책을 담당하던 국이 없었습니다. 정책이 점점 세분화하면서 5개 과로 구성된 산업기술국이 꾸려졌습니다. 기업과 대학에 R&D라는 개념조차 확립되지 않은 시기였죠. 공과대학 교수들마저도 학술지에 논문만 쓰면 된다고 생각했고 기업도 그냥 기술을 수입해 쓸 뿐 대학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설득 끝에 일부 기업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일부 대학과 연구, 인재 교류를 시작한 것이 지금의 산학협력 모델로 발전한 겁니다. 1993년, 1994년 즈음입니다. 부처와 업계 안팎에서 막 뭔가가 새롭게 생겨나던 때였습니다.”

성 총장은 기업과 대학, 공무원 선배들을 설득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도로나 플랜트를 일컬을 때 쓰던 인프라스트럭처 개념도 바꿨다. 기업이 제품을 개발하고, 대학은 우수한 인재를 공급하며 제품 개발에 도움을 주는 ‘기술 인프라스트럭처’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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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발견한 한국의 희망

성 청장은 한창 시기에 잠시 공직을 떠나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마음 한편에 남겨둔 공부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귀국 후 낯선 환경이 그를 맞았다.

“1990년대 후반 함께 일하던 동료와 선후배들이 많이 자리를 떠났습니다. 제조업의 위기 속에 벤처붐도 일었고 정보통신 등 여러 산업에서 변화가 이뤄지던 시기죠. 정책을 만드는 데서 벗어나 기업 현장에서 일할 기회가 많이 생겼습니다.”

고민하던 그에게 일본 경제산업성에 파견 갈 기회가 생겼다.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일본의 제조업이 뭔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일본 제조업의 축적된 저력을 봤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도 기회가 있다고 봤습니다. 당시 일본은 전자상거래를 막 도입하려던 시기였어요. 다른 분야는 일본에 의존했지만 이 분야만큼은 한국과의 교류가 가능한 분야였습니다. 아날로그 분야에선 우리가 뒤졌지만 혁신적인 디지털 분야에선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습니다.”

그렇게 일본 파견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한국의 제조업은 미래가 두렵다》는 책을 냈다. 이후 국내외 파견근무 기회가 많이 찾아왔다. 대통령 국정상황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주제네바대표부, 중소기업청, 국무조정실 등에서 일했다.

“청와대와 국무조정실에서 일하면서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볼 기회가 생겼어요. 한 부처에만 있다 보면 부처 중심적인 시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부처와 정책을 두고 맞설 때 항상 깨서 이기는 게 좋다고만 생각했어요.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 같은 위치에 있다 보면 우리 부가 어떻게 하면 잘할까를 생각하기보다 나라 전체에 좋은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 부에 예산과 인력이 얼마나 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진짜 정책을 고민하는 겁니다.”

온·오프라인 융합은 신대륙

성 청장은 콩나물탕 국물을 시원하게 들이켜더니 특허정책의 미래에 대한 생각도 가감없이 내놨다.

“실물경제를 담당하는 산업부가 상공부에서 산업자원부, 지식경제부 등 몇 차례 이름을 바꿔 단 것도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정책을 펼쳐야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시장은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습니다. 에너지와 자원이 중심일 때도 있고 정보화나 통상이 산업정책에서 중요할 때도 있으니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해 부를 창출했듯이 2000년대 초반 온라인이란 신대륙이 생겨났어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융합하는 또 다른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습니다. 한국엔 새 기회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일까. 그는 공무원도 시대의 흐름에 잘 맞춰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전에는 정부가 규제나 진흥을 통해 양적 성장을 주도하는 게 산업정책의 핵심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민간 주도로 기술력을 키우도록 하느냐가 핵심입니다.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은 정부 몫입니다.”

성 청장은 특허를 단순히 보호하고 관리하는 사고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부를 창출하는 ‘강한 특허’를 집중 발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세계 4위의 산업재산권 출원국이지만 여전히 지식재산권 무역수지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는 “기술이 융합하고 아이디어가 강조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특허 수보다는 강하고, 돈 되고, 좋은 특허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인정받는 강한 특허를 발굴하려면 R&D 시작 단계부터 지식재산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성 청장은 지난해 11월 취임 100일을 맞아 2022년까지 지식재산 무역수지를 흑자로 돌려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훗날 한국의 지식재산권 생태계의 양질 전환을 이룬 청장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특허청은 지식재산 정책 파트와 집행 조직이 함께 있는 독특한 형태의 행정조직입니다. 아랍에미리트(UAE)에 특허 행정시스템을 수출해 외화를 벌고 그 돈으로 벤처기업의 특허 유지비용을 감면할 수 있는 것도 정책과 집행을 함께 할 수 있어서죠. 특허청에는 석·박사, 변리사 등 우수한 인력이 많습니다. 이들을 잘 독려해 기술개발이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도록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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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시스템과 인력 수출로 돈 버는 부처 모델 만들어"

특허청은 중앙부처이긴 하지만 외부에서 돈을 버는 조직이기도 하다. 성윤모 특허청장은 “특허와 상표, 디자인 출원업무를 통해 연간 4000억원을 수수료로 번다”며 “이는 관련 심사관 1명당 연간 3억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특허청은 해외 수익사업으로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성 청장은 “한국의 특허 관리시스템이 국제적으로 공인받을 정도로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허청이 2006년부터 미국 등에서 국제 출원한 특허를 심사해 벌어들인 돈은 연평균 160억원에 이른다. 2014년부터는 아랍에미리트(UAE)의 특허 심사를 대행하며 지난 3월까지 수수료로 312만달러를 거뒀다. 2016년 UAE에 450만달러 규모의 특허 행정시스템을 수출하기도 했다.

성 청장은 “특허 행정시스템은 제값을 주고 사려는 나라가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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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모 청장의 단골집 탑집 콩나물·황태로 맛낸 '콩나물탕'…속풀이로 제격

대전의 옛 중심가 선화동에 있는 탑집은 따로 소개받지 않으면 쉽게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아는 사람 사이에선 유명한 곳이다. 타지로 옮겨간 충남도청과 대전시청 자리에서 가깝다. 대전지하철 중구청역 3번 출구에서 넉넉잡아 10분 거리에 있다. 긴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활짝 열린 대문 너머로 2층짜리 양옥집을 개조한 식당 모습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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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문을 연 지 31년째인 식당은 크고 작은 방 5개가 손님을 맞는다. 점심과 저녁 각각 딱 다섯 팀만 받는다. 평일에는 예약하지 않으면 발길을 되돌리기 일쑤다.

청포묵, 해물전, 콩나물탕, 콩나물밥에다 굴전(겨울), 수육(봄·여름·가을)이 나오는 메뉴 가격은 4인 기준으로 5만원(3인 4만5000원). 먹다가 수육과 굴전이 모자랄 땐 2만원을 더 내면 추가할 수 있다.

간장에 조린 소목심을 고명으로 올린 청포묵은 전채처럼 입맛을 돋운다. 젊은 여성 및 어린이 손님이 좋아한다. 콩나물, 황태와 바지락을 넣어 끓인 콩나물탕은 이 집의 자랑이다.

단골들은 콩나물탕을 콩탕으로 부르기도 한다. 맑은 국물에 말린 청양고추를 넣어 매콤한 맛을 더한다. 저녁에 술을 곁들인 손님 중에는 다음날 속을 풀기 위해 다시 찾을 때도 자주 있다고 한다.

대전=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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