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삼성바이오 겨냥한 금감원의 자충수
삼성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한순간에 사기꾼 기업이 됐다. 금융감독원이 ‘고의적인 분식회계’로 결론 내리면서다. 부당 이득을 취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회계 처리 방식을 변경했는지는 양측의 공방을 통해 가리면 된다. 그러나 금감원의 발표 행태와 대응 방식에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근로자의 날’로 주식시장이 휴장한 지난 1일 기습적으로 감리 결과를 발표한 것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금감원이 당사자에게 통보되지 않은 내용을 미리 언론에 밝히는 경우는 드물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감리는 지난 1년간 지지부진했던 데다 최근 이슈로 떠오른 문제도 아니다. 금감원의 ‘깜짝’ 발표가 논란을 촉발한 셈이다. 지난달 25일 바이오젠이 회계 공방의 쟁점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하겠다고 밝히자 불리해질 것을 우려해 금감원이 서두른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작년 2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에 “문제없다”고 한 금감원이 급하게 말을 바꾼 배경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시민단체와 정치권의 압박으로 무혐의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수사가 탄력을 받은 데다 이 문제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유다. 예상보다 제재 수위가 높아진 배경에도 결국 정치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겨냥한 금감원 발표가 자충수가 됐다고 평가한다. 국내 회계당국과 회계법인의 잘못을 자인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금감원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과정에서 회계 처리 문제를 방기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분식회계와 관련한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다면 공정하게 수사하고 삼성의 경영 승계와 관련이 있다면 철저히 밝혀야 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결정돼야 할 회계 기준이 정치 논리에 휘둘려선 안 된다. 개인투자자들은 이미 피해를 입었고 해외에서 우리나라 바이오 기업에 대한 신뢰는 흔들리고 있다. 이번 사태가 정부의 원칙 없는 회계 제도 운영의 민낯을 드러내는 결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