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일어난 포항 지진은 지열발전소가 유발했다는 내용의 학술 논문 두 편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정부의 정식 조사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지열발전소가 다시 한 번 지진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26일(현지시간) 포항지열발전소 시추 과정에서 주입한 물이 지진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결과를 담은 유럽과 국내 연구진의 논문 두 편을 공개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와 독일 포츠담대, 영국 글래스고대 등 유럽 과학자로 구성된 디스트레스 연구진은 규모 5.5의 포항 지진이 땅속에 물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땅이 갈라져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진은 원거리 지진 관측 자료와 레이더 위성이 지표를 관측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포항 지진의 본진이 일어난 역단층이 지열발전소의 시추공 깊이(지하 4.1~4.3km) 바로 아래를 지난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김광희 부산대 교수와 이진한 고려대 교수 등 국내 학자 6명이 참여한 연구진도 같은 날 사이언스에 포항 지진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포항 지진은 지열발전소가 주입한 물이 단층에 들어가면서 촉발된 유발지진이라는 분석 내용을 담았다. 연구진은 물 주입 시점인 2016년 이전에는 진원 부근에서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고 주입 이후 150건의 미소지진이 일어났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지진관측망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시추공과 진원 깊이가 일치하고 위치도 지하 단층과 가깝다고 분석했다. 두 연구진의 분석 결과를 놓고 보면 포항 지진은 그동안 지열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유발지진 중 규모가 가장 큰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선 셰일가스 채굴이 많아지면서 지진 발생이 증가한다는 보고가 늘었다. 셰일가스는 지하에 수직으로 시추공을 판 뒤, 다시 셰일층에 구멍을 내 가스를 뽑아내는 방식(수압파쇄법)으로 채굴한다. 이 과정에서 지층 빈 공간이 물로 채워지면서 지진이 잦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학자들은 지열발전소 역시 셰일가스처럼 땅을 깊이 뚫어 주변 지층을 부수거나 갈라지게 해 강진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포항 지진이 일어난 진앙에서 2㎞ 떨어진 곳에는 지열발전소가 건설 중이었다. 김 교수와 이 교수는 2016년 이후 규모 2미만의 작은 지진이 급증한 사실을 포착하고 포항 지진의 원인이 지열발전소라고 지목했다.

지열 발전을 포항 지진의 원인으로 속단해서는 안된다는 전문가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2011년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일어난 규모 5.6 지진도 하수 주입에 따른 유발지진이지만 포항보다 40배가 많은 양의 물을 주입했고 포항처럼 물 주입 후 2주후가 아니라 곧바로 지진이 일어났다는 점을 반박 근거로 들고 있다. 훨씬 적은 주입량으로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난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광희 교수는 “학계에서 그간 통용된 지진 규모와 물 주입량 관계식이 틀릴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일부 학자들은 지진이 일어난 단층 형태와 응력 방향을 보면 물 주입 효과가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 있고 논문에서 진원 깊이 추정에 사용된 ‘속도모델’도 정확한 상황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투고한 상태다.

이번에 공개된 논문들은 대한지질학회가 주도하는 포항지진 조사연구단의 정식 조사 결과는 아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번 연구가 어디까지나 학술적 연구지만 최종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논쟁이 재점화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유럽 연구진은 논문 초록에 포항 지진이 주변의 더 큰 단층에 힘을 가했으며 이 지역에 잠재적인 지진재해 위험성이 증가했다는 내용까지 담아 이를 둘러싼 논란도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지진 전문가들은 지난해 11월 열린 긴급 포럼에서 지진 원인을 찾는데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대한지질학회는 “논문에서 제시한 내용을 살펴보면 지열발전과 포항 지진이 연관됐을 가능성을 부인하기 어렵다”면서도 “관련성 여부를 판단하려면 시추공과 진원이 가깝다는 점 외에도 지진을 유발할 충분한 압력과 응력이 형성됐다는 증거도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물을 주입할 때 미소지진이 일어나지 않고 주입이 끝난 두 달뒤 5.4 지진이 일어났는지 원인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김광희 교수도 “이번 연구는 지열발전소가 포항 지진의 원인임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지만 정확한 원인은 공식 조사 결과가 나와 봐야 관련성 여부를 최종 판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디스트레스측도 “본진과 물 주입의 연관성을 설명할 정량적 모델과 분석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번 연구 결과는 잠정적인 결과이며 추후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