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경희대 호텔관광대 1층 워커힐홀에서 열린 ‘힐링 레스토랑’ 프로그램에 경희의료원 암 환자 및 가족 30여 명이 참석해 식사하고 있다. 경희의료원 제공
지난해 12월 경희대 호텔관광대 1층 워커힐홀에서 열린 ‘힐링 레스토랑’ 프로그램에 경희의료원 암 환자 및 가족 30여 명이 참석해 식사하고 있다. 경희의료원 제공
유방암 3기 환자인 김혜정(가명) 씨는 최근 딸 결혼식을 앞두고 미용실 대신 병원으로 향했다. 그가 찾은 곳은 경희의료원이 병원 내에서 운영하는 이미지증진센터. 김씨는 항암 치료로 빠져 듬성듬성해진 머리 스타일에 대해 상담받았다. 이미지증진센터는 암 환자에게 가발을 무료로 빌려주고 스타일링 서비스도 제공한다. 김씨는 “탈모로 자신감이 떨어져 몇 년간 미용실에 가지 못했는데 병원에서 외출하기 어려운 환자를 위한 스타일링 프로그램을 지원해주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병원들이 암 환자 치료 공간에서 치유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암 치료 후 생존율과 함께 삶의 질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자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치료에서 치유 공간으로

암 환자를 위해 15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경희의료원은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3년부터 매년 12월 암 환자와 가족을 위해 여는 ‘힐링 레스토랑’이 간판 프로그램이다. 암 환자와 보호자를 초대해 코스 요리를 대접하는 행사다. 경희대 음대 출신 공연팀이 행사 전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고 경희대 호텔관광대 학생 40여 명이 음식을 조리한다.

최수근 경희대 조리과학과 교수가 암 환자의 심신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식단을 소개하고 집에서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준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길연 경희대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투병 생활을 하는 환자와 가족은 삶의 여유가 없어 좋은 식사를 즐기기 힘들다”며 “가족과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암 환자의 가장 큰 걱정인 외모 변화를 개선하기 위해 운영 중인 이미지증진센터도 그 가운데 하나다. 연성대 헤어스타일리스트학과 교수진이 환자에게 적합한 가발을 추천하거나 스타일링·메이크업 서비스를 제공한다.

연세암병원은 매주 월요일 소아암 환아와 형제, 자매를 대상으로 미술 수업(해오름회)을 한다. 화가가 미술 교사로 참여해 수채화, 아크릴화 등 다양한 그림을 지도한다. 병원 관계자는 “평소 학교생활을 함께할 수 없는 형제, 자매가 그림을 그리면서 추억을 쌓을 수 있어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들에게도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총 5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병원이 이처럼 변화하는 이유는 치열한 환자 유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권위적이고 일방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 환자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내놓는 병원에 환자를 뺏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환자 가족의 마음까지 치유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도 늘어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는 2008년부터 암 환자와 배우자의 건강한 성생활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부인암·비뇨기암 전문 간호사가 상담하며 감염 예방법, 피임법, 성 관련 약물과 시술에 관해 설명한다. 김임령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 수석간호사는 “적절한 부부생활은 암 환자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며 “환자의 고민에 맞는 해결책을 소개해 암 환자의 성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암병원 암정보교육센터는 후두 절제 수술을 받은 후두암 환자가 가족들과 원활히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식도 발성법을 가르치는 ‘새소리회’를 운영하고 있다. 식도 발성법은 식도로 공기를 넣은 뒤 트림하듯 내뱉으면서 말하는 방식을 뜻한다. 의료진이 시연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식도 발성법 노하우를 체득한 후두암 환자 자원봉사자 6명이 교사로 활동하며 매주 소수 환자에게 발성법을 교육한다.

병원 관계자는 “암은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뿐만 아니라 가족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는 병이기 때문에 종합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며 “암 전문병원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심리, 문화, 가족상담센터 등과 결합한 진화한 형태의 병원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