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승차공유기업 우버가 동남아시아 사업을 현지 경쟁 기업 그랩에 매각하기로 했다. 중국 러시아에서 잇달아 사업을 철수한 데 이어 승차공유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동남아에서도 현지 기업과의 경쟁에 밀려 사업을 넘기기로 한 것이다. 우버와 그랩 두 회사의 최대주주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이 과도한 출혈경쟁을 피하고 자율주행 시장 경쟁을 본격화하기 위해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승차공유 시장 주무르는 '손정의'… 우버 동남아 사업, 그랩에 매각
◆우버의 잇단 해외사업 철수

26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우버는 동남아 사업을 그랩에 넘기는 조건으로 그랩 지분 27.5%를 인수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앤서니 탄 그랩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을 통해 “이번 인수로 새로운 승차공유 시대가 열렸다”며 “우버와 그랩의 결합으로 동남아 승차공유 플랫폼의 리더가 탄생하고, 가격 효율성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 밀집도가 높고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동남아는 승차공유 시장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동남아 1위 승차공유 기업 그랩이 우버와 손잡으면서 인도네시아 기업 고젝과의 정면 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동남아 승차공유 시장은 2025년까지 지금의 네 배 규모인 200억달러(약 21조570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우버는 내년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비용 절감 차원에서 동남아 사업 철수를 결정한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세계 승차공유 시장을 장악하며 급속도로 팽창한 우버는 이로써 인도를 제외한 주요 신흥시장에서 모두 손을 뗐다.

2016년 10월 중국 승차공유업체 디디추싱에 중국 사업을 매각하고 디디추싱 지분 17.5%를 인수했다. 지난해 7월에는 러시아 기업 얀덱스 지분 36.6%와 러시아 사업을 교환했다. 현지 승차공유 기업과의 과도한 출혈경쟁을 피하는 대신 지분 교환 방식으로 승차공유 시장의 지배력을 확보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글로벌 승차공유 시장 주무르는 '손정의'… 우버 동남아 사업, 그랩에 매각
◆진짜 승부처는 자율주행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은 우버와 그랩의 합병을 손 사장이 그린 모빌리티 플랫폼의 ‘큰 그림’으로 보고 있다. 밍 마 그랩 사장은 “이번 인수 합의는 손 사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1월18일 우버 지분 15%(소프트뱅크가 이끈 컨소시엄 지분율 17.5%)를 확보하며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성추문 스캔들로 지난해 6월 CEO 자리에서 물러난 트래비스 캘러닉 우버 창업주로부터 보유 지분(10%)의 3분의 1을 14억달러에 인수하는 등 두 달간 지분 인수 작업을 한 결과다. 우버 경쟁 업체에 잇달아 투자하며 ‘반(反)우버 연대’를 구축한 상황에서 우버 최대주주 자리까지 꿰차자 “손 사장이 글로벌 승차공유 시장의 진정한 승자”라는 평가가 나왔다.

손 사장은 우버의 출혈경쟁을 막고 지역별로 사업을 분할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손실을 내고 있는 우버의 해외 사업은 현지 기업에 넘기는 대신 북미 호주 사업에 집중한다는 구상이다.

소프트뱅크는 2014년 올라(인도)와 그랩(싱가포르)에 각각 2억1000만달러, 2억5000만달러를 투자하며 승차공유 시장에 진출했다. 디디추싱에도 지난 3년간 198억달러 규모의 공동 투자를 약정하며 우버와의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지난해 5월엔 브라질 승차공유업체 99를 2억달러에 인수했다.

세계 승차공유 시장을 장악한 손 사장의 진짜 승부처는 자율주행자동차 시장이다. 승차공유 플랫폼이 자율주행 모빌리티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손 사장은 2016년 영국 암(ARM)을 인수해 자율주행 반도체 설계 부문에도 진출했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소프트뱅크가 차량호출 서비스를 통해 축적한 방대한 운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글 아마존 등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에 비해 열세이던 자율주행 데이터 부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