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과학기술 한류'… '베트남판 KIST' 세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발전 모델로 삼는 ‘베트남판 KIST’인 VKIST(조감도)가 착공에 들어간다. 과학계에 따르면 오는 22일 베트남 호아락 하이테크파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베트남 정부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VKIST 착공식이 열린다.

하노이 서쪽 30㎞ 거리에 있는 호아락 테크노파크에 마련된 약 19만8000㎡ 부지에는 2020년까지 본관과 연구동 세 개, 부대시설을 갖춘 연구원 300명이 근무할 연구단지가 조성된다.

VKIST 건설에는 모두 7000만달러가 들어가는데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이 중 절반인 3500만달러를 지원한다. 이는 한국이 공적개발원조(ODA)로 개발도상국을 지원한 사업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KIST는 연구소 건축과 연구장비 지원 등 인프라 구축 노하우를 전수하고 운영 자문, 교육연수 프로그램을 지원하기로 했다.

VKIST사업은 2012년 베트남이 한국의 과학기술 역량을 전수받고 싶다고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1966년 미국의 원조로 설립돼 한국 산업화를 이끈 KIST를 모델로 삼아 베트남판 KIST라고 불린다. VKIST라는 이름도 베트남 정부가 정했다. 원조를 통해 과학연구소를 보유하게 된 나라가 똑같은 연구소 모델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는 보기 드문 사례다. 베트남전 참전 대가로 설립된 연구소가 전쟁 당사국에 ODA 방식으로 연구소 설립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IST는 설립 이후 포항제철(현 포스코) 설립 타당성 조사, 중화학공업 육성계획, 자동차·전자산업 육성계획 등 핵심 산업 육성을 위한 싱크탱크 역할을 했다. 한국의 첫 컬러TV, 전자계산기, 미니컴퓨터 개발 및 국산화를 주도했다.

기술경영경제학회는 지난 50년 동안 KIST가 약 595조원의 사회·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했다고 분석했다. 베트남 정부도 이 같은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베트남의 경제구조는 국내총생산(GDP)에서 경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KIST가 설립된 직후인 1970년대 한국과 매우 비슷하다.

베트남 과학기술부도 한국 경제 성장의 근간을 마련한 KIST의 운영 노하우를 적극 받아들여 VKIST를 국가 발전의 견인차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베트남 정부는 VKIST를 통해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BT)을 중점적으로 키울 계획이다. 또 농수산업이 크게 발전한 점을 고려해 작물과 채소, 수산물을 안전하게 운송할 첨단 물류 기술 개발에도 나서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베트남에 모바일 분야에 이어 TV와 냉장고 등 첨단 가전을 연구하는 두 번째 연구개발(R&D)센터를 세웠다. 베트남 정부는 VKIST 설립으로 현지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이 더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VKIST를 통해 낡은 R&D 체계를 바꾸고 우수 인재를 유치하는 발판으로 삼을 계획이다. 금동화 전 KIST 원장을 지난해 초대 원장에 선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 원장은 “베트남 정부는 KIST가 설립 초기 미국에 유학 중이던 젊은 과학자들을 데려와 화학공업과 전자산업을 일으킨 점에 주목하고 있다”며 “해외와 베트남에서 촉망받는 인재를 뽑아 배치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