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주목하는 핵산 치료제 개발 기술로 한국의 제넨텍 만들겠다”
제넨텍, 암젠, 길리어드, 리제네론…. 9일 찾은 경기 수원의 올릭스 본사 회의실들은 모두 이같은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조그마한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수십조원 가치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바이오 업체들의 이름이다. 회의실 이름을 지은 배경을 묻자 이동기 올릭스 대표(사진)는 "올릭스도 대학 연구실에서 출발했지만,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신약개발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저분자화합물로 만든 치료제는 1세대로 분류된다. 아스피린, 타이레놀이 대표적이다. 이보다 진보한 2세대 신약은 항체 치료제다. 휴미라, 엔브렐, 레미케이드 등 해마다 조(兆) 단위의 매출을 올리며 의약품 매출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치료제들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된다. 3세대는 DNA와 RNA를 타깃으로 하는 핵산 치료제다. 유전자 치료제라고도 불린다. 지난해 1조원 가까운 매출을 올린 바이오젠의 스핀라자가 여기 속한다.

올릭스는 3세대 신약개발에 도전한다. 'RNA 간섭(RNAi)'이라는 원리를 이용한 핵산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단백질을 만들도록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mRNA'에 작용해 단백질 생성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RNAi라는 현상은 1998년 처음 발견된 최신 연구주제다. 이를 발견한 앤드루 파이어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와 크레이그 멜로 매사추세츠의대 교수는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RNAi 기술에 기반한 핵산 치료제의 특징은 단백질의 생성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생성된 단백질에 작용하는 기존 치료제들과 달리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세포 속 RNA을 타깃으로 삼기 때문에 기존 치료제들에 비해 표적 가능한 범위도 넓다. 저분자화합물은 결합이 가능한 특정 단백질만 공격할 수 있고, 항체 신약은 세포막 밖에 존재하는 단백질에만 작용한다는 한계 때문에 표적 가능한 유전자는 전체의 15%에 그친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핵산 치료제는 모든 유전자를 타깃으로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핵산 치료제에 거는 기대가 크다. 2002년 설립된 미국 신약개발 벤처기업 앨나이램은 아직 시장에 내놓은 제품이 없는데도 RNAi 기반 핵산 치료제의 출시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가총액은 14조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RNAi 기반 치료제도 제약은 있다. 치료제를 표적까지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맥에 주사해 원하는 장기, 조직으로 정확히 전달하는 문제도 풀어야 한다. 올릭스는 이를 넘기 위해 국소 투여가 가능한 질환으로 대상을 좁혀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피부, 눈, 호흡기 등에 주사나 분사 같은 방식으로 직접 치료제를 전달하는 전략이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세포막을 투과해 표적까지 도달하게 하는 '비대칭 siRNA 기술'도 자체 개발했다.

올릭스가 갖고 있는 후보물질(파이프라인) 중 가장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된 것은 비대흉터 치료제 'OLX101', 황반병성 치료제 'OLX301', 폐섬유화 치료제 'OLX201'다. 치료제가 마땅히 없는 질병들이다. 이중 OLX101은 국내 바이오기업 휴젤에 2013년 기술 이전을 했다. 휴젤이 아시아 지역 판권을 갖고 올릭스와 함께 국내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적인 황반변성 석학인 자야크리시나 암바티 버지니아주립대 교수가 자문을 맡고 있는 OLX301도 기대가 크다. 현재 글로벌 신약개발전문 CRO(임상수탁기관) 기업인 코반스와 손을 잡고 비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내년 초 미국이나 유럽에서 임상 1상에 진입하는 게 목표다. OLX201도 내년 임상시험 시행을 계획하고 있다.
“세계에서 주목하는 핵산 치료제 개발 기술로 한국의 제넨텍 만들겠다”
현직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인 이 대표가 사업가로 변신한 것은 신약 개발에 대한 꿈 때문이었다. 경남과학고 출신의 이 대표는 KAIST에서 화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코넬대에서 생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로지 '화학' 외길이었다. 이 대표는 "오랫동안 생화학을 공부하면서 직접 신약을 개발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핵산 치료제는 역사 자체가 짧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도 기술적으로 크게 앞서 있지 않은 상태"라며 "다국적 제약사가 아직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은 최신 기술이라면 연구실에서 출발한 올릭스라도 글로벌에서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올릭스를 설립했다. 직원이 35명으로 늘어났지만 당시에는 2명이 전부였다. 이 대표가 처음부터 창업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기술을 개발해 대형 제약사에 기술이전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핵산 치료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기업은 없었다.

그는 "직접 해보자고 결심했다"고 했다. 지금까지 총 29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받은 올릭스지만 처음에는 투자 유치가 순탄치 않았다. 첫 투자는 설립 4년 만인 2014년에 비로소 유치했다. 이후 동물실험 등에서 좋은 결과를 내며 기술력이 입증되면서 추가 투자를 받았다.

올릭스는 기술특례상장을 통한 코스닥시장 데뷔를 꿈꾸고 있다. 지난해 기술보증기금과 나이스평가정보로부터 모두 A등급의 기술평가를 받았다. 이 대표는 "올해 상반기 예비 심사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이제 막 시작 단계인 핵산 치료제로 한국의 제넨텍을 만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