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과 탄탄한 수익모델로 만든 글로벌 서비스
“한국 스타트업이 해외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 스타트업 업계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편견 가운데 하나다. 하이퍼커넥트는 이런 고정관념을 보기좋게 깬 회사다.이 회사의 모바일 영상 메신저 ‘아자르’는 출시 3년여만에 전세계에서 1억건이 넘는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한국 시장에서 발생하는 매출액은 10%를 넘지 않는다. 중동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 남미 등 32개국의 앱스토어(구글플레이)에서 1위에 오르는 등 명실상부한 ‘글로벌 서비스’다. 이같은 성적을 발판 삼아 내년도 상장(IPO)을 위한 준비 작업에 한창이다.

누적 친구 연결 건수는 153억건에 이른다

아자르(azar)는 스페인으로 ‘우연’을 뜻한다. 전세계 사용자를 ‘우연히’ 영상으로 만나는 서비스란 의미다. 지인과 영상으로 대화하는 것은 물론 친구 발견 기능을 통해 전세계 사람과 만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누적된 친구 연결 건수는 153억건(2017년 3월6일 기준)에 이른다. 안상일 하이퍼커넥트 대표는 “다양한 국적과 문화, 인종, 언어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얘기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기술력과 탄탄한 수익모델로 만든 글로벌 서비스
하이퍼커넥트의 성장세는 ‘고속 질주’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다. 2013년 11월 아자르 앱을 처음 선보인 이후 10주 만에 사용자 100만명을, 8개월 만에 사용자 850만명을 모았다. 출시 2년 6개월 만인 2016년 5월 다운로드 5000만건을 넘었고 올해 1월 들어 1억명 고지를 밟았다.

◆32개국에서 일매출 1위를 기록했다

다운로드 속도가 가팔라진 이유는 초기 중동지역 중심이던 사용자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모바일 앱 분석 사이트 앱애니에 따르면 구글플레이에서 아자르가 일일 매출 1위를 기록한 국가는 모두 32곳이다. 쿠웨이트, 모로코, 터키 등 중동지역부터 볼리비아, 파라과이, 베트남 등 다양한 지역까지 인기가 확산되고 있다. 하루 매출 5위권을 기록한 나라까지 합치면 100곳에 이른다.
왜 하필이면 중동에서 처음 반응이 왔을까. 대면 대화를 선호하는 문화 영향이 컸다는 것이 회사의 자체 분석이다. 기후 문제로 오후 2~3시면 퇴근을 하기 때문에 영상 통화 앱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것이다. 평소 밖에서 얼굴을 드러내기 힘든 여성들이 아자르를 이용해 지인과 대화한 것도 서비스 인기의 한 이유였다.

비디오 사용자 1인당 월비용이 0.03원에 불과하다

기술력도 인기의 비결 중 하나다.
단순한 영상 통화 서비스로 보이지만 막대한 양의 영상 데이터가 만들어내는 트래픽을 감당하려면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다. 하이퍼커넥트는 ‘하이퍼RTC(리얼 타임 커뮤니케이션)’란 자체 솔루션을 개발했다. 구글이 2011년 공개한 오픈소스 프로젝트 ‘웹RTC’를 모바일 환경에서 구현한 첫 사례다. 구글의 웹RTC는 웹브라우저상에서 별도의 프로그램 설치 없이 화상채팅을 할 수 있는 기능이다. 아자르는 하이퍼RTC를 이용해 네트워크 환경이 좋지 않는 저개발국가나 저가 휴대폰 등 다양한 통신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고품질 영상 대화를 할 수 있다. 비디오 사용자 1인당 월 유지 비용이 0.03원에 불과할 정도로 효율성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아자르는 대화내용을 실시간으로 통역할 수 있다.
아자르는 대화내용을 실시간으로 통역할 수 있다.
언어의 장벽도 뛰어넘을 수 있다. 안 대표는 “최근 상대방 언어를 모르는 외국인끼리 대화할 수 있도록 구글의 실시간 번역을 적용했다”며 “구글과 음성번역 분야에서 제휴한 것은 하이퍼커넥트가 세계 최초”라고 강조했다. 서비스 초창기에도 대화 상대방이 사용하는 언어로 간단한 인삿말을 전달하는 기능은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실시간 음성 번역 서비스를 도입해 누구와도 본인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번역 수준이 높지 않고 말이 번역돼 자막으로 나오기까지 몇 초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구글 번역기의 발전에 따라 해결될 문제다.

4전 5기 끝에 이뤄낸 성공

하이퍼커넥트의 성공은 안 대표의 숱한 실패를 딛고 이뤄졌다. 그는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을 하이퍼커넥트 경영에 적용해 실패의 반복을 막았다.
안 대표는 2000년 서울대 재료공학과 1학년 때부터 학내 벤처동아리인 서울대학생벤처네트워크에 들어가 창업으로 성공한 선배들을 만나면서 벤처 창업의 꿈을 키웠다. 실전 경험을 위해 김밥 장사도 해봤다.
안상일 대표
안상일 대표
첫 창업은 2002년이었다. 사업 기획서를 대신 써주는 비즈파트너라는 회사를 차렸다. 어느날 겁없이 IT 솔루션 업체에 투자를 했다가 엄청난 손실을 봤다. 섣부른 투자의 무서움을 이때 처음으로 느꼈다. 손실을 떠안고 사업을 접은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에 나섰다.
2007년 2월 서울대 사내벤처로 시작한 레비서치는 검색기술 회사였다. 이 회사가 내세웠던 ‘신뢰도 추정 알고리즘’은 개개인의 평판을 모아 편차를 최소화한 뒤 수치로 표시하는 기술이다. 서울대 전체 시스템에서 레비서치의 검색 기술을 사용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법인을 세워 국내보다 미국에서 먼저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신선한 기술로 관심을 끌어 투자도 받았다.

“수익모델이 없는 서비스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투자자가 손을 거두기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제품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안 대표는 “프로덕션 능력이 없었다”며 “꿈은 있었지만 현실로 이뤄낼 역량이 없었기에 실패한 것”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투자가 끊기면서 서비스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와 집, 예금 등 모든 재산을 팔아 30명에 이르는 임직원의 마지막 월급과 회사 미지급금을 해결하고 나니 남은건 빚 뿐이었다. 남들처럼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는 평범한 삶을 왜 선택하지 않았을까 후회까지 들었다.
하이퍼커넥트 창업멤버 3인방. 왼쪽부터 안상일 대표, 정강식 CTO, 용현택 COO.
하이퍼커넥트 창업멤버 3인방. 왼쪽부터 안상일 대표, 정강식 CTO, 용현택 COO.
그래도 다시 도전했다. 대학 동기인 정강식 이사, 병역특례업체 동기인 용현택 이사 등과 함께 하이퍼커넥트를 공동 창업해 ‘4전 5기’ 끝에 성공을 이뤄냈다. 그는 사업 실패를 통해 세 가지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수익모델이 없는 서비스는 하지 않겠다’는 게 첫 번째다. ‘비전이 아무리 좋아도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소용없다’, ‘서비스는 소비자가 좋아하는 걸 내놔야 한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꼈다.

서비스 출시 3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아자르는 철저히 안 대표의 교훈을 발판삼아 만들어졌다.
수익 모델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자르의 수익 모델은 단순하다. 성별과 지역을 ‘필터링’하는 것이다. 무료 서비스만 이용할 때는 친구 연결을 누르면 전세계의 사용자 가운데 무작위로 한 명과 연결된다. 과금을 하면 성별과 지역을 필터링할 수 있다. 남성이나 여성 중 특정 성별의 사용자만 만날 수 있고 특정 국가의 사용자를 지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술력과 탄탄한 수익모델로 만든 글로벌 서비스
이같은 모델 덕분에 하이퍼커넥트의 매출은 안정적으로 증가했다. 서비스를 내놓은 지 3개월 만에 누적 투자 비용을 모두 회수한 이후 꾸준히 흑자를 기록 중이란 설명이다. 2014년 12월 알토스벤처스에서 200만달러(약 22억원)를 투자받았고, 2015년 11월에는 소프트뱅크벤처스와 알토스벤처스로부터 10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안 대표는 “전세계 곳곳에서 모인 업계 최고 수준의 인재들이 능력을 인정받으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회사는 직원들에게 업계 최고 수준의 급여를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 상당수는 삼성전자, 네이버 등 대기업 출신이다.

직원 20%는 외국인

아자르 이용자의 90% 이상이 외국인인데다 특정 국가가 아닌 전세계 200여국에 퍼져있다보니 회사로선 문화나 언어가 전혀 다른 이용자의 요구를 맞춰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런 이유로 하이퍼커넥트 직원 중에는 외국인이 많다. 본사 직원 80여명 가운데 외국인 비중이 20% 이상이다. 미국 일본 프랑스 터키 태국 대만 모로코 말레이시아 등 출신 지역도 다양하다. 주요 국가별로 담당 매니저를 정해 운영하는 식이다. 안 대표는 “문화적 배경이 없으면 국가별 맞춤 서비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회사보다 외국인이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기술력과 탄탄한 수익모델로 만든 글로벌 서비스
하이퍼커넥트는 서울 강남역 인근 한 빌딩의 3개 층을 쓰고 있는데 가운데 층 전체를 ‘하이퍼스페이스’란 이름의 휴식 겸 놀이 공간으로 꾸몄다. 이곳에는 탁구대, 당구대, 오락실 게임기, 만화책 서가, 노래방 기기 등 다양한 휴식 시설을 마련했다. 업무 시간 중 언제라도 이곳에 와서 머리를 식힐 수 있다. 안 대표는 “아직 전체 직원 수는 적지만 워낙 다양한 국가, 인종, 종교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서로 잘 섞이고 소통하는 회사 문화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며 “일할 때뿐 아니라 쉴 때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놀이 공간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넓지만 얕은 서비스 범위는 위험요인

아자르가 글로벌 1억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리스크도 상존한다. 가장 큰 위험은 확실한 1위 사업자로 자리매김한 국가가 없다는 것이다. 서비스 범위가 넓은 대신 ‘얕은’ 셈이다. 한국의 카카오톡이나 일본, 동남아의 라인처럼 특정 시장을 장악한 서비스는 이를 플랫폼 삼아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하거나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2등 사업자는 이같은 전략이 쉽지 않다. 점점 사용자들이 스마트폰에 설치하는 앱의 숫자도 줄어드는 추세여서 한 국가의 점유율이 떨어지면 같은 지역권의 국가로 금세 퍼질 수 있다. 안 대표는 “국가별 맞춤 서비스를 통해 점유율을 올리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