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비트코인 열풍과 인공지능 정밀의료
비트코인을 필두로 암호화 블록체인 가상화폐에 대한 기대감이 여기저기서 회자되고 있다. 가상화폐, 그중 대표 격인 비트코인이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에 의해 처음 전파돼 많은 이를 열광시키는 기저에는 ‘탈중앙화’라는 가치가 숨어 있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을 통한 분산화 장부를 고안해 중앙집권적인 정부와 은행 등 중앙기관 없이도 개인 간 안전하게 거래가 가능하도록 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튤립 버블과 유사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국내 처음 인공지능(AI) 기반의 암 치료 시스템인 IBM 왓슨 포 온콜로지를 도입한 필자의 소속병원을 중심으로 의료계에서도 이 같은 탈중앙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그간 ‘빅5’인 서울 소재 유수의 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현상은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우리가 아플 때 주로 찾는 소위 명의들이 이런 병원에 많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AI 왓슨 포 온콜로지 도입 이후 주요 암 부문에서 국내 의료계, 특히 암 치료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는 빅5 병원과 가천대 길병원의 격차가 상당 부분 좁혀진 것으로 확인됐다. 여전히 절대 숫자나 비중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이런 진료행태의 변화가 감지된 것은 의미가 자뭇 크다고 할 수 있다.

기존 암 환자들은 진료실에 들어가 권위적인 의사의 치료 계획을 그대로 듣고 따라야만 했다. 의학 정보에 관해서는 환자 및 의료진 간 현저한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대가’라 불리는 권위있는 의사들의 치료 방침은 금과옥조로 여겨졌다. 대개 이런 결정은 수많은 의학연구 논문과 충분한 경험 등을 기반으로 이뤄지지만 세계적으로 시행되는 다양하고 새로운 치료법과 연구 결과를 총망라해 의사 개인이 내용을 분석하고 치료에 적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길병원에서는 AI 왓슨 암센터 내 다학제 진료실에서 관련 진료과 전문의들과 환자 및 보호자가 함께 AI를 이용한 치료법을 상의한다. 한 자리에서 여러 관련 과목 전문의가 다양한 의견을 교류한다. 의료진은 최적의 맞춤형 치료방침을 권유할 뿐 아니라 각 치료법의 대략적인 일정과 생길 수 있는 합병증 등도 포괄적으로 설명한다. 환자 및 보호자가 앞으로 받을 치료에 대한 이해도와 치료 순응도, 만족도가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 있었다.

얼마 전 AI 왓슨 포 온콜로지를 도입한 6개 병원의 담당 의료진이 모여 ‘AI 6’ 라는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연고가 없는 환자 및 보호자들이 기존 빅5 병원으로 치료받기 위해 상경하던 과거와 달리 의료계에서도 탈중앙화, 탈권위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빅데이터 기반 AI 정밀의료는 대한민국 의료계에 바람직한 변화의 바람을 몰고올 것으로 기대해본다.

오진규 < 가천의대 비뇨기과학교실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