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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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길다보니 가족이나 친척들과도 대화 시간도 길어졌다. 가족간에 얘기가 깊어지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대화주제는 '생로병사'다.

편찮으시거나 돌아가신 어르신들 얘기를 하다보면 자녀들의 교육, 결혼, 취직 얘기는 오히려 행복한 고민에 속한다. 주변에 유명을 달리한 어르신들의 장례 얘기를 하다보면 답답하고 남일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막상 '죽음'을 맞닥뜨리면 마음의 준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된다. 슬픔과 황망함에 뭐부터 해야할지 경황이 없는 건 기본이다. 상주이거나 가족·친척이 별로 없는 경우에는 난생처음 결정해야 할 항목들이 많다. 정신없이 결정한 결과는 장례가 끝나면 영수증으로 돌아온다.

스마트한 시대에 대부분의 서비스가 스마트폰을 통해 서비스되는 시대가 됐지만 '장례'만은 예외였다. 더군다나 '관혼상제(冠婚喪祭)'에서 성인식, 결혼식, 제사 등은 수년간에 거쳐 간소해지고 허례허식이 줄었다. 반면 '장례'만은 형식과 과도한 비용이 여전한 분야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부 상조회사들은 폭리를 취하거나 사건·사고를 일으키면서 장례와 관련된 업체들에 대한 불신은 커지고 있다.

◆상조·장례업체가 제시하는 금액만 추종 …"장례 거품가격의 원인"

장례가 막상 닥치게 되면 장례비용이 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돈을 아끼거나 형식과 예를 다하지 않는 까닭은 '망자에 대한 불효'라는 우려에서다. 그렇다보니 업체들이 요구하는 비용을 다 지불하고 장례를 끝낸 후에야 생각한다. '이건 필요가 없었는데', '이렇게까지 비싼 걸 할 필요가 있었나'하면서 후회하는게 보통이다.

이러한 '걱정'을 날리면서 '허례허식'을 막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나왔다. 이른바 스마트 장례 O2O(Online To Offline,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서비스)인 '대장정' 앱이다. 장례관련 전문가와 장례를 치르려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서비스다.
이명규 표준장례문화원 대표
이명규 표준장례문화원 대표
대장정은 '대신 장례를 정리해준다'는 앞자를 따왔다. 업체를 찾아 연락하는 방식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는 국가공인 전문장례지도사를 '호출'하는 방식이다.

앱을 내놓은 곳은 장례의전서비스업체인 한국표준장례문화원이다. 전국 시도에 16개의 지사를 두고 있으며, 2658명의 장례관련 인력들이 제휴됐다. 2015년 설립돼 장례사업을 하면서 O2O 사업을 준비해왔다. 지난달 내놓은 이 앱은 현재 베타서비스중이며 정식버전은 오는 11월 출시될 예정이다. 장례서비스를 앱으로 만들기 위해 2년간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명규 대표(40·사진)를 추석 연휴 중에 만났다.

이 대표는 앱을 만든 이유로 '장례에 가격거품을 없애려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례를 혼례와 다르게 어렵고 멀게 여긴다"며 "그러다보니 상조업체나 장례업체가 제시하는 금액에 따르게 되고 여태까지 거품가격을 지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례는 결혼과 달리 날이 미리 잡히지 않고 갑자기 발생하다보니 횟수가 많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치러진 장례건수만 28만건에 달한다. 이를 하루로 환산하면 전국에서 매일 750~800건 가량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스마트 장례 '대장정'앱 실행화면
스마트 장례 '대장정'앱 실행화면
이 대표는 장례를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장례는 장례지도사와 장례도우미 등 도와주는 사람이 몇명이냐가 비용의 관건"이라며 "앱을 통해 호출하게 되면, 가장 가까운 전문가들이 나타나게 되고 여건이나 평가에 따라 고객들이 선택하면 된다"고 말했다.

사람을 이어주는 서비스가 주력이다보니 장례용품에서는 가격거품을 뺄 수 있었다. 장례용품은 한국표준장례문화원이 도매로 구매해 시중가 보다 낮은 가격에 내놓고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앱을 통해 수의나 상복, 관의 종류와 갯수 등을 직접 정할 수 있다. 일부 장례전문가들이 장례용품으로 비용을 과도하게 높게 책정하는 문제도 사전에 차단했다.

그는 "과거를 생각해보면 동네에 장례업자 한 두명이 도맡아 했고, 비용이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았다"며 "최근에는 상조회사가 나타나면서 장례수준을 높인다는 명목하에 일반인들과 장례전문가, 양쪽에서 수수료를 떼면서 장례비용 자체가 올라갔다"고 주장했다.

◆ "소비자가 직접 선택, 가격 거품 줄이겠다"

상조회사들이 장례시장을 장악하다보니 장례전문가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소속된 경우가 많다는 것. 고객 입장에서는 '매달 얼마를 내면 어떤 서비스를 해준다'는 얘기밖에 없음에도 가입대상이 주로 노인층이다보니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가입하는 게 다반사라는 설명이다.

장례 항목마다 비용이 얼마라던가 일반 장례로 할 때보다 상조회사에 가입하면 어떤 혜택이 있는가와 비용이 어떻게 달라지는다 등의 구체적인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점이 문제라고 이 대표는 지적했다. 최근 상조회사들이 장례 외에 다른 서비스를 이유로 비용을 더 높게 받는 것도 비용거품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이명규 표준장례문화원 대표
이명규 표준장례문화원 대표
그는 "상조 회사의 장례 상품은 월 납입금이 1만~3만원대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옵션들을 추가되면서 6만~7만원대의 고가상품까지 나와 총 납입금액이 못해도 290만원, 390만원, 490만원 등의 단위"라며 "막상 장례 수준을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반값 정도면 충분히 치를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실제 대장정 앱에는 이용자들이 직접 항목들을 선택하면서 가격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직접 선택하는 장례 외에도 패키지 구성도 있어 대충의 가격을 산정해볼 수도 있다. 장례지도사 3명과 장례복지사 2명 등 5명이 진행하고 리무진까지 포함되지만, 가격은 180만원대다. 장례전문가가 8명 동원되고 버스까지 포함된 최고급 패키지를 하더라도 360만원대다. 물품 가격까지 모두 공시됐다. 가격의 거품을 빼겠다는 이 대표의 의지가 녹아있는 부분이다.

앱에는 갑작스런 사망에 대응해야할 메뉴들도 있다. 행정정보에는 사망 후의 행정처리와 재산조회 및 상속, 세금 신고 등의 요령을 설명해놨다. 법률서비스와 각종 사고 및 보험 분쟁과 관련된 서비스를 위해 변호사와 법무사, 손해사정사와도 제휴를 맺었다.

앞으로는 앱 서비스를 최적화하는 동시에 신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장례 관련 용품들을 직접 확인하고 체험할 수 있는 체험센터를 건립하고, 반려동물 장례 서비스 등도 추진할 예정이다.

◆"일자리 창출에 긍정적 역할할 것 …반려동물 장례사업 예정"

이 대표는 현재 서울의 독거노인은 물론, 고독사, 무연고 사망자 등에 대한 장례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대장정 앱이 활성화되면 한국표준장례문화원이 나서서 전국적으로 장례지원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상조회사들이 앱 시장에 뛰어들게 되면 과열되지 않겠냐고 묻자 이 대표는 '바라던 바'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상조회사들이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비현실적인 장례비용을 현실에 맞도록 낮춘다면 장례업계에 대한 신뢰도 높아질 것"이라며 "일부 업체들의 횡포로부터 소비자들의 피해를 함께 예방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말했다.
한국표준장례문화원은 지난 8월 앱 출시를 앞두고 전문가들과 학술세미나를 진행했다. 가운데에서 오른쪽 이명규 대표.
한국표준장례문화원은 지난 8월 앱 출시를 앞두고 전문가들과 학술세미나를 진행했다. 가운데에서 오른쪽 이명규 대표.
이 대표는 일자리 창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봤다. 그는 “대장정 앱을 통해 장례지도사들과 사용자들을 연결해주다보면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며 "연간 누적 회원이 100만명에 달하면 장례지도사는 최소 500명 이상, 장례도우미는 3000명 이상이 필요해질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그는 앱 출시를 앞두고 최근 몇개월 동안 전국을 돌며 학술 세미나를 열였다. 장례전문가들과 학계 교수와 변호사, 법률전문가들이 모여서 앞으로 달라져야할 장례문화에 대해 토론을 했다. 지난 달에는 일본 센슈대학교 히타카 요시히로 이사장과 일본의 장례문화와의 비교를 통해 O2O서비스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방안을 살피기도 했다.

그는 "기존 상조·장례관련 업체들과 연계해 지금까지의 장례 산업 폐단을 개선하고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도록 하겠다"며 "국가자격자인 장례지도사들의 권익을 신장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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