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을 맡고 있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 사진=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제공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을 맡고 있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 사진=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제공
"하나, 편법적인 상속 경영을 하지 않겠습니다.

둘, 부당한 가족 경영을 하지 않겠습니다…"

지난 26일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창업허브에서 연 1주년 기념 포럼에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대표들이 또박또박 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스타트업 신경제 선언문'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스타트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약속하는 5가지 조항이 담겨 있었다.

이날 행사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1년 간 성과와 향후 계획을 공유하고 주요 회원사들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지난해 9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주요 스타트업들이 모여 발족한 연합체다. 30여개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현재 회원사는 115개로 4배 가량 늘어났다.

축하도 모자랄 돌잔치가 딱딱한 선언문 낭독으로 시작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회원사 대표들은 지난 1년 동안 줄기차게 규제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업계 입장을 정부와 국회에 전달했다. 이번 선언문에는 바라는 만큼 책임을 다하겠다는 상직적 의미가 포함됐다. 규제 환경 개선에 대한 자신들의 목소리에 더 힘을 실어보겠다는 것이다.

포럼 의장을 맡고 있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선언문을 공개하며 "스타트업이 잘되면 경제적 이익을 넘어 사회적 가치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년 간 우리 재원의 절반 이상을 규제 해결을 위해 썼다"며 "미국 기업들이 모여서 혁신 서비스를 궁리할 때 우리는 어떻게 규제를 풀어야 할까 고민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카풀 중개 서비스를 운영하는 김태호 풀러스 대표는 "우리가 모여서 이런 선언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내년에는 올해와 다른 2주년 기념 포럼 행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열린 코리아스타트업포럼 1주년 기념 포럼에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맨 오른쪽)와 주요 스타트업 대표들이 사회적 책임을 약속하는 '스타트업 신경제 선언문'을 낭독했다. / 사진=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제공
지난 26일 열린 코리아스타트업포럼 1주년 기념 포럼에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맨 오른쪽)와 주요 스타트업 대표들이 사회적 책임을 약속하는 '스타트업 신경제 선언문'을 낭독했다. / 사진=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제공
다른 스타트업 대표들도 한목소리를 내면서 이날 행사는 규제 환경 개선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특히 규제로 인한 외국 기업들과의 '역차별' 문제에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이 많았다.

이수진 야놀자 대표는 "외국 기업인 에이비앤비는 국내에서 공유 숙박업을 마음껏 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은 하지 못한다"며 "숙박업 허가를 받지 못하는 방을 공유하면 불법이 되는데, 에어비앤비는 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규제가 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정보기술(IT) 업계가 역차별 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 양대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카카오의 수장들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임지훈 카카오 대표는 얼마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해 "저희만 예뻐해달라는 게 아니고 글로벌 기업과 똑같은 운동장에서 뛸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몸집이 작은 스타트업이 체감하는 무게는 네이버나 카카오가 느끼는 것보다 클 수 밖에 없다. 사업이 잠시 삐끗하는 정도가 아닌 사업을 존폐를 가를 수 있는 문제여서다. 불안한 미래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이미 국내 숙박 예약 서비스 업체들은 에어비앤비에게 국내 여행객들을 뺏기고 있다. 그런 와중에 숙박 예약 서비스 야놀자는 최근 게스트하우스 가맹점을 확충하면서 허가 받지 않은 업체들을 걸러내느라 애를 먹었다.

행사가 끝날 무렵 이런 얘기도 나왔다. "그래도 이라크나 북한에 태어나 사업하는 것보다 나으니 참다 보면 좋은 날이 오지 않겠냐."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지만 다시보면 웃기지만 슬픈(웃픈) 스타트업의 현실이었다. 1년 뒤에는 이들이 더 희망적인 이야기로 시원하게 웃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