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이 본사에 있는 카나브 응원나무 앞에서 보령제약 60년사를 들고 웃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이 본사에 있는 카나브 응원나무 앞에서 보령제약 60년사를 들고 웃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용각산, 겔포스로 유명한 보령제약이 오는 10월1일 창업 60주년을 맞는다.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85)이 1957년 300만환(약 570만원)으로 서울 종로5가에 문을 연 보령약국은 연매출 약 8000억원에 계열사 여덟 개를 거느린 보령제약그룹으로 성장했다.

김 회장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60세에 환갑잔치를 하듯이 약국에서 시작해 기업인으로서 60년을 맞았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창업주가 60년 동안 현업에서 기업을 이끌어 온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세계를 누비며 파트너사 관계자를 만나고 수출 현장을 직접 챙긴다. 창업 때부터 고집해 온 ‘신뢰와 성실’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김 회장은 “신용을 잃은 사람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라며 “신뢰는 남다른 성실과 정직함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령약국의 성공 비결도 이 두 가지 키워드와 맞닿아있다. 그는 당시 관행이던 외상거래 대신 현금결제를 도입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약이 없으면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약을 구해왔다. 보령약국은 종로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열고 가장 늦게 문을 닫았다. 언제 가도 원하는 약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손님이 몰려들었다.

김 회장은 “신뢰를 지킨 덕분에 보령약국이 제약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지나온 60년을 매듭 짓고 앞으로 40년 동안 보령제약의 지향점은 무엇인지 100년 좌표를 세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보령제약이 나아가야 할 길로 글로벌화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미국 사무소 개설 계획도 밝혔다. 중국 법인에 이어 두 번째 해외 거점이다.

그는 “제약산업 종주국인 미국을 빼놓고 글로벌화를 말할 수 없다”며 “바이오 벤처가 모여있는 실리콘밸리나 워싱턴주 쪽에 미국 사무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사무소는 보령제약이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고혈압 신약 카나브와 복합제의 임상 1상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김 회장은 “실리콘밸리에서 백신 임상과 신제품 개발을 하고 있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카나브 진출을 시작으로 현지 제약기업과의 연구개발까지 영역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제2의 카나브’와 같은 후속 신약 개발 계획에 대해서는 “신약 개발은 쉬운 일이 아니다”며 “신약다운 신약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카나브도 1992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20년 가까이 걸렸다”며 “지금까지 국산 신약이 29개 나왔는데 카나브만 세계 시장에 진출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1년에 신약이 몇 개씩 나오는데 개발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다국적 제약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령제약이 18년 동안 500억원을 투입한 카나브는 약 60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누적 수출액은 4억1000만달러(약 4640억원)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연간 약 500억원어치가 처방돼 고혈압 단일제 기준으로 최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하반기부터는 동남아 시장에서도 카나브가 본격적으로 발매된다. 지난 5월 싱가포르에서 시판 허가가 났고 연내 말레이시아와 태국에서 허가를 앞두고 있다. 내년에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허가를 받을 계획이다. 그는 “다음달부터 러시아에서 카나브 판매가 시작된다”며 “중국과 유럽에서도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2019년 완공 예정인 충남 예산 신공장이 글로벌 진출의 중심축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세계 수준급 생산기지를 조성하겠다는 꿈이 실현됐다”고 했다. “카나브로 해외에서 성공할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길게 보고 일보 전진하면 글로벌 토털헬스케어기업으로 불리는 날이 오겠지요.”

■ 프로필

△1932년 충남 보령 출생 △서울 숭문고, 국학대 상학과, 고려대 경영대학원 졸업 △한국제약협회 회장(1991~1993) △세계대중약협회(WFPMM) 회장(1991~1993) △주한 투발루 명예총영사(현) △보령중보재단 이사장(현) △일본 다무라과학기술진흥재단 이사(현)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