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진료와 허위 청구 등 건강보험 부당 청구는 매년 수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적발되지 않고 지급되는 금액만 한 해 2조원이 웃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안착하려면 건강보험 재정 누수부터 막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간 기능 조정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기준 부적절하게 지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강보험 급여는 2조2000억~3조8000억원이었다. 같은 해 보건복지부, 건보공단, 심평원 등이 적발한 부당청구액은 1조442억원에 그쳤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 건강보험 진료를 받거나 의료기관 등에서 불필요한 진료를 해 매년 1조원 넘는 건강보험 재정이 새고 있는 셈이다.
"건보 보장성 강화, 재정 누수 막기에 달려"
환자 부담을 늘리는 주범으로 지적된 비급여 진료는 환자의 과도한 의료서비스 이용을 제한하는 역할도 했다.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가 이뤄지면 불필요하게 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신영석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급 병실 차액, 특진비 등이 없어지는 등 환자 부담이 줄면 대형 대학병원 이용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정부는 예비급여 등을 통해 이를 상당부분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예비급여는 비용 효과성이 떨어지는 진료 등에 환자 부담을 90%까지 늘리는 제도다. 하지만 병원과 환자가 담합하거나 경증 환자를 중증 환자로 둔갑시켜 진료비를 높게 청구하는 부당 청구까지 걸러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건보공단과 심평원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했다. 건보공단은 건강보험료 징수를, 심평원은 지급 심사를 담당한다. 이런 구조가 재정누수 원인으로도 꼽힌다. 재정 운용에 책임이 있는 건보공단이 돈을 지급하는 기관으로 전락하면서 보험료 징수는 엄격하고 진료비 지출은 느슨한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심평원의 진료비 심사 삭감률은 1% 미만이다. 7% 안팎으로 추정되는 부적절한 의료 이용률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의료 질은 떨어지고 부당 청구가 많은 병·의원을 관리하는 역할을 건보공단이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복지부가 건강보험 운영에 관한 각종 기능을 심평원에 위탁하면서 심평원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심평원 인력은 2500여 명으로 2000년 출범 당시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들의 상당수는 건강보험제도 운영, 보험수가 결정 등 심평원 본래 업무와 무관한 일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6월 건강보험 40년 기념 토론회에서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복지부가 급여 결정 등의 기능을 심평원 역할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심평원 설립 취지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두 기관 간 업무 중복도 풀어야 할 숙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이로 인한 재정누수를 줄이는 두 기관 간 기능조정 방안을 추진했지만 일부 기관 등의 반대로 논의가 중단됐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