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빅데이터 시대 왔는데…'건설현장 노임'처럼 산정하는 SW 개발비
“소프트웨어(SW) 개발이 무슨 건설 노가다냐?”

국내 한 시스템통합(SI) 회사의 인사담당 임원은 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최근 내놓은 SW 사업 대가산정 가이드에 대해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에서 건설공사 인부들의 노임을 계산하듯이 프로젝트 참여 인력의 등급과 숫자를 따져 대가를 결정하는 관행을 꼬집은 것이다.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신기술이 혁신을 이끌어가는 현실에서 이 같은 낡은 가치 산정 방식으로는 국내 SW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SW 개발이 건설공사?

2016년 소프트웨어 기술자 노임 단가 (일당)
2016년 소프트웨어 기술자 노임 단가 (일당)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차세대 정보기술(IT) 서비스의 핵심은 SW다. 데이터를 처리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알고리즘을 얼마나 독창적으로 짜느냐가 성능을 좌우한다. 그런데도 국내에선 이 같은 SW 개발 때 건설공사 인부의 노임을 계산하듯이 프로젝트 참여 인력의 등급과 숫 자를 따져 사업 대가를 결정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소프트웨어산업협회는 이달 초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공공 SW 발주 사업에서 투입 인력 계획을 전체 참여 인원이 아니라 프로젝트매니저(PM) 등 핵심 인력에 한정하도록 한 새로운 ‘SW 사업 대가산정 가이드’를 발표했다. 그럼에도 이번 가이드에서는 프로젝트 투입 인력의 숫자와 등급을 따져 사업 대가를 결정해온 기존 관행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소프트웨어산업협회는 매년 개발자 등급에 따라 받아야 할 평균 임금(옛 노임 단가)까지 결정 고시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산업협회 관계자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SW 패키지를 시장 가격으로 분리 구매하거나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실제 비용을 사후 정산하는 방식을 사용한다”며 “국내에서는 평균 임금이 사실상 최저임금의 역할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개발자 등급제 폐지해야”

이번 개편안에서 기존 학력·자격증 위주의 SW 인력 등급 체계를 직무·역량 중심으로 바꾼 것은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과거에는 박사학위나 기술사 자격증이 없으면 실질적으로 최고 등급에 오르기 어려웠다. 반면 이제는 현장 경력과 교육 훈련만으로도 최고 등급인 ‘마스터’에 오를 수 있게 됐다. 해외 IT 기업에서처럼 ‘백발의 개발자’가 탄생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내 한 SI 기업의 인사담당 임원은 “애초에 개발자의 역량 강화가 아니라 사업 대가산정을 위해 도입된 개발자 등급제를 시대 흐름에 맞게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