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백록담 1만9000년 이전에 형성"
제주 한라산의 백록담이 최소 1만9000년 전에 형성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의뢰로 지난 3월부터 이달까지 한라산천연보호구역에 대한 기초학술 조사를 벌여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소개했다. 백록담을 시추해 형성 시기를 밝혀낸 건 처음이다. 연구진은 지난 9월 백록담을 시추해 지하 30m 지점에서 채취한 샘플이 1만9000년 전에 형성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백록담 분화구가 형성된 시기가 이보다 앞선다는 뜻이다. 이번 연구를 담당한 임재수 지질연 책임연구원은 “이는 한라산의 화산 활동이 2만년 전 빙하기가 최전성기일 때 활발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근거”라고 말했다.
"한라산 백록담 1만9000년 이전에 형성"
백록담 사상 첫 시추

"한라산 백록담 1만9000년 이전에 형성"
이 조사는 올해부터 2019년까지 한라산의 지형·지질, 동식물, 기후에 대한 체계적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추진된다. 이번 조사에선 레이저를 활용해 한라산의 정확한 높이도 새롭게 규명됐다. 연구진은 레이저 빛이 물체에 맞고 되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물체 형태와 위치를 알아내는 라이다(LiDAR)를 항공기에 싣고 백록담 주변 지형 정보를 파악했다. 라이다는 나무나 풀에 가려진 지형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어 정밀 지형 정보를 구축하는 데 유용하다. 지난 7월과 8월의 항공 촬영에선 한라산 정상을 비롯해 해발 600~1500m 지역을 3.8㎝ 오차로 정밀 촬영했다. 그 결과 한라산 최고 높이가 1947.06m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존에 알려진 1950m보다 조금 낮다.

겉으론 완만한 듯 보이지만 험준한 지형을 감춘 한라산 모습도 새로 확인했다. 한라산 북쪽 지역 평균 경사는 22.15도로 대체로 완만한 편이지만 한라산 북쪽 무수천과 한천 주변 경사는 40도 이상, 큰두레왓과 용진굴 인근 지역은 무려 경사가 80도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는 드론(무인항공기)도 투입됐다. 이를 활용해 파악한 결과, 한라산 북서벽과 삼각봉 일대는 침식이 심각해 관광객이 다니는 등산로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동아시아 고기후 연구에 활용 기대

백록담에서 시추한 샘플에는 1만년 전 동아시아의 고(古)기후를 엿볼 수 있는 실마리도 담겨 있었다. 연구진은 백록담에 얼마나 많은 물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샘플에 섞여 있던 유기탄소 동위원소를 측정했다. 이 값이 크면 과거에 물에 많이 잠겨 있었다는 뜻이다. 분석 결과 8000년 전과 7000년 전, 6000년 전, 5000년 전 백록담 수위가 현재보다 10m 이상 높았다는 결론을 얻었다. 7500~5000년 전이 가장 온난한 시기라는 다른 연구 결과와 일치하는 대목이다. 연구진은 “당시 해빙기에 접어들면서 제주는 해수면이 상승하며 쿠로시오 해류에 가까워졌고 따뜻한 해수면 온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때부터 대륙성 기후 영향에서 벗어나 현재의 해양성 기후 권역으로 편입됐다”고 말했다.

한라산은 다양한 동식물의 낙원이라는 사실이 또 한 번 증명됐다. 백록담 주변의 동·식물 조사에서는 돌매화나무와 한라솜다리, 한라송이풀 등 멸종위기 식물 3종이 발견됐다. 지금까지 일본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거미류 1종을 비롯해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지렁이 2종 등 신종 후보와 미기록종 생물 23종이 추가로 발견됐다.

김홍두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장은 “이번 학술조사는 한라산 일대 지형과 생태에 대한 정량화한 자료를 확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백록담 퇴적층 연구가 동아시아 기후 변화 연구에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