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혼란 틈타 슬그머니…몸집 키우기 나선 심평원
“수백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마치 쌈짓돈처럼 조직 키우는 데 쓰려는 게 말이 됩니까.”

최근 만난 한 병원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순실 사태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타고 슬그머니 조직을 확대하려 하고 있어서다. 의료계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오는 20일 이사회를 열어 서울 의정부 광주 등 세 곳의 지원 건물을 증개축하는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원이 없는 인천에는 새로 지원을 세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의료기관에서 제출한 건강보험 청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심사하는 곳이다.

의료계에서는 벌써부터 예산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증축 계획에 포함된 의정부 지원은 올 3월 문을 연 곳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업무량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1년도 안 돼 증축에 나서는 것은 주먹구구식 탁상행정의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잡음이 나오자 당초 13일로 잡힌 이사회를 연기했다.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내부 의견 때문이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늘어나는 민원 업무 등을 분산하기 위해 조직 확대가 필요하다”며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워낙 민감한 사안이어서 시기가 다소 늦춰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밥그릇 싸움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내년에 계획 중인 보건의료 분야 공공기관 기능조정에 앞서 조직의 덩치를 키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기재부의 기능 조정안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건강보험공단의 중복 업무를 줄이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진료비를 부당하게 청구한 의료기관에 잘못 지급된 진료비를 환수하는 업무가 그것이다. 중복업무 조정이 이뤄지면 두 기관의 역할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업무량이 늘어난 원인 중 하나는 자동차보험 심사위탁 등 민간보험 관련 업무 때문이다. 민간보험 업무 위탁 때문에 늘어난 비용 부담을 공공보험에 떠넘기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국민들이 내는 건강보험 재정으로 운영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07년 1361억원이었던 지원금은 지난해 3029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내년에는 4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보험료는 몸이 아파 병원에 가는 국민들의 의료 보장성을 높이고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술, 처치 등의 수가를 높이는 데 활용돼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조직 이기주의 때문에 몸집 키우기에 나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