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게임 빅뱅'…걸음마도 못 뗀 한국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내 최대 게임쇼 ‘지스타 2016’이 20일 나흘간의 일정을 끝으로 폐막했다.

올해 지스타에서 관람객들의 눈길을 독차지한 것은 가상현실(VR) 게임이었다. ‘배트맨 아캄 VR’ 등 VR 게임 11종을 선보인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의 전시관에는 줄이 100m 넘게 이어졌다.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사인 엔비디아가 연 VR 체험관은 방문 순서대로 120명의 예약을 받았는데 30분 만에 마감됐다.

아쉬운 것은 이처럼 주목받은 곳들이 모두 해외 업체라는 대목이다. 국내 게임업계 3강으로 불리는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는 이번 행사에서 VR 사업에 대한 이렇다 할 계획조차 내놓지 못했다. 한국 VR 콘텐츠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 20일 폐막한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인 '지스타'에서 관람객들이 가상현실(VR) 게임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 20일 폐막한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인 '지스타'에서 관람객들이 가상현실(VR) 게임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VR 게임을 개발하는 국내 업체는 VR 총싸움게임 ‘모탈블리츠’를 개발 중인 스코넥엔터테인먼트와 엠게임, 로이게임즈 등 중소업체 몇 곳에 불과하다. 이번 지스타에서도 일부 업체가 VR 체험관을 마련했지만 정식 타이틀도 아니고 시연용 데모를 선보이는 수준에 그쳤다. 소프트뱅크벤처스 등 국내 유수 벤처투자사 심사역들은 “국내에는 투자할 만한 VR업체를 찾기 힘들다”며 “해외로 눈을 돌려야 괜찮은 곳이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게임업체들은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VR 시장 진출을 주저하고 있다.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대형 게임사 부사장은 “아직까지 VR 게임은 어지럼증 등으로 인해 30분 이상 몰입하기 힘들다”며 발을 들이기에는 이르다고 평가했다.

기다렸다가 경쟁력 있는 업체를 인수합병(M&A)하는 전략을 쓰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중국 업체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넷마블이 세계 최대 카지노게임업체 ‘플레이티카’를 인수하려다 중국에 뺏긴 사례도 있다.

국내 게임업체들은 이미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산업 주도권을 중국 업체들에 내준 아픈 경험도 갖고 있다.

2000년대 온라인게임 절대강자로 군림했지만 성공에 도취해 있다가 모바일 게임이라는 새로운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기술이나 시장은 이처럼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 지금처럼 관망만 하다가 VR 게임 시대가 닥치면 따라잡기 힘들 만큼의 격차를 느껴야 할지도 모른다.

유하늘 IT과학부 기자 sk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