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 수정 과정 없이 태어난 쥐들. 연합뉴스
난자 수정 과정 없이 태어난 쥐들. 연합뉴스
유럽 과학자들이 난자 없이 정자만으로 새끼 쥐를 태어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앤서니 페리 영국 배스대 교수와 크리스토프 클라인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교수 연구진은 난자가 아니라 ‘유사 배아’에 정자세포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건강한 새끼 쥐를 태어나게 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최신호(13일자)에 발표했다.

자연에서는 수컷과 암컷이 짝짓기해서 자손을 퍼뜨리는 유성(有性)생식이 있는가 하면, 홀로 자손을 만드는 무성(無性)생식이 있다. 인간을 비롯해 포유류 대부분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된 배아가 세포분열 과정을 거쳐 생명체로 성장한다. 연구팀은 수정되지 않은 쥐의 미수정 난자를 화학물질로 조작해 무성생식이 가능한 유사 배아로 만들었다.
영국과 독일 과학자들이 쥐의 미수정 난자(사진)를 유사 배아로 만들고 여기에 정자세포를 주입해 새끼가 태어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네이처  제공
영국과 독일 과학자들이 쥐의 미수정 난자(사진)를 유사 배아로 만들고 여기에 정자세포를 주입해 새끼가 태어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네이처 제공
이 유사 배아들은 비록 난자를 이용했지만 피부세포 등 다른 일반 세포와 특징이 거의 같다. 연구진은 쥐 정자를 이 배아에 주입한 뒤 암컷에 착상시켰다. 이렇게 만들어진 배아는 죽지 않고 성공적으로 발달해 건강한 새끼로 자랐다.

이전에도 난자와 정자의 수정 과정 없이 배아를 만드는 방법은 있었지만 대부분 며칠 만에 죽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유사 배아에 정자를 넣을 경우 배아 100개 중 24개가 새끼로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제양 돌리에 적용한 체세포 이식 방식 복제 배아(2%)보다 성공률이 훨씬 높다. 이 새끼 쥐는 건강하게 평균수명을 산 것은 물론 정상적 생식으로 후손까지 남겼다.

이번 연구에는 난자 세포가 사용되긴 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론상 난자세포가 아니라 피부세포 같은 일반세포를 이용해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페리 교수는 “이번 연구로 반드시 난자가 아니더라도 생명체를 태어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며 “200년 가까이 정자와 수정한 난자만이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오랜 정설을 뒤집었다”고 평가했다.

올초에는 정자 없이 난자만으로 후손을 태어나게 하는 연구 성과도 나왔다. 중국 난징의대와 중국과학원(CAS) 등 공동연구팀은 지난 2월 쥐의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실험실에서 정자를 만든 뒤 이를 난자와 수정시켜 정상적인 새끼를 출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줄기세포로 정자를 만든 사례는 있었지만 난자와 수정이 가능하도록 정상적인 기능을 갖춘 정자를 만든 것은 처음이다.

연구진은 쥐의 배아줄기세포를 원시 생식세포로 유도한 뒤 테스토스테론 등 성호르몬에 노출시켜 정자와 비슷한 생식세포로 만들었다. 그리고 암컷 난자와 수정시킨 뒤 수정란을 암컷의 자궁에 착상시켰다. 이렇게 태어난 새끼 역시 건강했고 다른 쥐와 교배해 건강한 후손을 낳았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연구가 불임 극복은 물론 노화에 따른 질병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정자와 난자 없이 세포만을 이용해 생명을 만들 수 있어 독신 남성과 여성이 자신을 닮은 후손을 얻거나 남성 커플과 여성 커플이 자식을 낳을 수 있는 길이 머지않아 열릴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일각에선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물학적 역할이 종말을 고할 수 있다며 윤리적 논쟁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