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VR연합군' 탄생…120억달러 펀드 조성
대만의 휴대폰 제조업체인 HTC가 가상현실(VR) 시장 규모를 키우기 위해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30일 벤처업계에 따르면 HTC는 120억달러(약 13조4000억원) 규모의 VR 투자 펀드를 조성하는 한편 VR시장에 대한 투자와 정보교류를 위해 세계 각국의 벤처캐피털(VC) 37곳과 협력해 VRVCA(가상현실벤처캐피털협회)도 설립했다. HTC는 이를 통해 VR업체 간 인수합병(M&A) 을 주도하는 등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급성장 VR시장에 승부수

'글로벌 VR연합군' 탄생…120억달러 펀드 조성
HTC가 이번 펀딩 및 VRVCA 설립을 주도하게 된 배경은 휴대폰시장에서 고전을 만회하면서 신성장 사업 분야를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HTC는 애플과 중국 업체들의 급부상으로 인해 휴대폰 사업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 1분기 HTC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4%나 감소했다. 한때 글로벌 3위에 올랐던 HTC의 휴대폰 판매량은 올 1분기 세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반면 HTC가 최근 출시한 VR 기기 ‘바이브’는 판매호조를 보이고 있다. 올 3월 첫 출시 당시 10분 만에 2만여대가 판매됐고 현재도 공급 물량이 달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60억달러(약 6조7000억원)인 VR시장(기기, 콘텐츠, 소프트웨어 포함)은 내년 100억달러(약 11조1800억원), 2020년 700억달러(약 78조3000억원)로 커지는 등 4년여 만에 10배 이상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 업체들에도 기회

HTC는 VRVCA에 글로벌 유명 투자회사들을 끌어들였다. 애플, 구글, 알리바바 등에 초기 투자하는 등 세계 최대 VC로 손꼽히는 세콰이어캐피털과 애플, 바이두 등에 투자한 매트릭스파트너 등 글로벌 VC 37개사가 VRVCA에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가 유일하게 참여했다. 120억달러는 HTC가 자체적으로 조성한 펀드뿐 아니라 VRVCA에 참여한 글로벌 VC들이 VR에 투자할 자금을 모두 합한 액수다.

VRVCA는 다음달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첫 모임을 한다. 초기엔 느슨한 형태의 연합으로서 정보를 교환하고 협력을 모색하는 수준이겠지만, VR시장의 성장 및 투자 규모에 따라 대규모 M&A를 추진하는 등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투자 유치를 희망하는 VR 분야 기업들은 웹사이트(www.vrvca.com/submit/)에 지원서를 제출하면 된다.

VRVCA의 투자 활동은 아직 미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한국의 VR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VR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VC의 투자를 받아 해외로 진출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사장은 “대규모 자본을 가진 유수의 벤처캐피털이 새로운 산업의 미래를 위해 힘을 합친 이례적인 일”이라며 “발빠른 대응으로 적절한 투자가 이뤄지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VR 기기에 콘텐츠, 음향, 소프트웨어 등이 더해져 VR산업 생태계가 생각보다 빠르게 정착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