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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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구 기자 ] 제목에서 질문을 하나 던져봤습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대략의 숫자는 비슷할 것 같아요. 혹시 당신이 머릿속에 떠올린 대학은 5개에서 9개 사이 아닌가요?

근거는 인지과학 초창기인 1950년대 조지 밀러 교수가 제시한 ‘매직넘버 7’ 법칙입니다. 인간이 인지하는 특정한 단위의 숫자가 7±2, 즉 5~9개 정도라는 내용이죠.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으나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수(8개교)도 이 범위 안에 들어가는군요.

물론 7이라는 숫자가 절대적 의미를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후에 여러 반론이 제기됐지요. 매직넘버는 7이 아니라 4라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요는, ‘마법의 숫자는 몇이냐’가 아니라 ‘어떤 최적의 숫자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 전문가도 빠지는 '매직넘버의 덫'

매직넘버 케이스로 굳이 대학을 든 이유가 있습니다. 매년 발표되는 유명 세계대학평가 순위가 이런 매직넘버의 편향(bias)에 좌우되곤 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의 실제 성과보다 그 대학의 인지도가 몇 손가락 안에 드는지가 훨씬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는 것이죠.

평가지표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동료평가(peer review)’ 항목이 있어요. 해당 분야에서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대학을 최대 30곳까지 쓰게 합니다. 설문에는 대학 교수들이 참여하죠. 그런데 의외로 허용된 최대치를 적어내는 교수가 거의 없다는군요. 30개까지 쓸 수 있어도 보통 7개 내외의 대학만 써낸다고 합니다.

하버드대 캠퍼스.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하버드대 캠퍼스.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교수라면 그 분야의 전문가잖아요. 상대적으로 상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요.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대학도 낱낱이 알고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쏠림현상이 생기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한 마디로 “귀찮아서”겠지요. 전문가로서의 정보력·판단력보다 인간 인지능력의 습성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서의호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인간공학 관점에서 이러한 편향은 무시할 수 없는 인간 행동의 결정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교수들 사례는 특히 흥미롭네요. 보통 전문가와 일반인 간의 정보력 또는 지적 능력의 차이는 뚜렷한 편차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잖아요. 그러나 결과는 일반론과 달랐습니다. 교수들마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도 매직넘버의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죠.

◆ 럭키세븐? 매직세븐! 숫자의 마법

다른 질문도 해볼게요. 특정 제품군에서 좋아하는 브랜드를 말해볼까요. 두 자릿수 꼽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니겠지요. 브랜드 파워를 가진 몇몇 업체의 ‘승자독식’ 구조가 되는 이유와도 맥이 닿습니다.

다만 우리가 인지하는 단위가 한 자릿수라면 너무 적은 것 아닌가 싶은데요. 의미를 부여하는 ‘덩어리 짓기(chunking)’가 이런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어떤 병원의 전화번호 뒷자리가 8275이라고 합시다. 숫자 4개를 일일이 외우는 대신, 소리 나는 대로 ‘빨리 치료(=8275)’란 덩어리를 만들면 기억할 단위가 1개로 줄어드는 식이죠.

사실 인간의 지각능력은 매우 편의적입니다. 내 안에 형성된 어떤 관념에 비춰 사물을 보고 인지하며 판단하거든요. 그렇지 않다면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 놀랄 이유가 없겠지요. 인간 외부의 객관적 조건이 아닌 내부의 주관적 습관이 인식을 결정한다는 방증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럭키 세븐’과 ‘매직넘버 세븐’의 간극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아요. 꼭 7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합리적으로 추론 가능한 ‘최적의 수’가 있다는 게 핵심이니까요. 온라인 쇼핑할 때는 빅데이터 기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제품 가짓수가 몇 개인지 눈여겨봐야겠네요.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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