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POLITICS]
{신경민 더민주당 의원,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 대표 발의}

[한경비즈니스=김현기 기자 ]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오늘날의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퇴근해도 퇴근한 게 아니다. 퇴근 이후에도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카톡(카카오톡 메신저) 때문이다.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속된 말로 상사의 메시지를 씹었다간 ‘왕따’를 당할 수도 있어서다. 직장 생활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스트레스다.

근로기준법에 퇴근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에 발의돼 화제를 모았다. 반응은 엇갈렸다.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은 크게 환호한 반면 관리자급인 40~50대는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식의 미심쩍은 반응이었다.
“퇴근 후에는 날 찾지 말아줘”
◆엇갈린 세대별 반응…실효성 여부 논란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월 22일 퇴근 후 문자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 통신수단을 이용해 업무 지시를 내릴 수 없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사용자가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근로시간 이외의 시간에 전화(휴대전화 포함), 문자 메시지, SNS 등 각종 통신수단을 이용해 업무에 관한 지시를 내려 근로자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신 의원은 헌법 제17조 ‘국민의 사생활의 자유 보장’, 제32조3항 ‘인간의 존엄에 반하지 않는 근로조건의 보장’, 제34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개정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소정의 근로시간을 정하고 이를 초과해 근무할 때는 당사자 간 합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SNS가 보편화됨에 따라 이를 악용해 퇴근 후에도 불필요한 업무를 지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근로자가 겪는 스트레스가 ‘메신저 강박증’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신 의원의 설명이다.

신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기에 앞서 국회입법조사처로부터 전달 받은 보고서에 따르면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면서 업무와 관련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의견이 평균 43%나 됐다.

‘업무 시간 외 또는 휴일에 스마트 기기를 사용해 업무를 처리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70.3%가 ‘처리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시간대별로는 퇴근 이후가 78.5%로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주말(56.1%), 연차 등 휴가 기간(45.5%), 출근 시간 전(32.4%) 등의 순서였다.

또한 올해 3월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직장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선 전체 응답자의 88%가 공식 근무시간 외에 업무를 처리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5월 인터넷 취업 포털 사이트 ‘사람인’이 직장인 734명을 대상으로 같은 질문을 던진 결과 88.3%가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즉시 업무를 처리했다’고 답했으며 60.3%는 ‘회사로 복귀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인식도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의 인지도 조사에서 38%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답했고 ‘들어봤지만 내용은 잘 모른다’가 33.3%를 차지했다. ‘잘 알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4.2%에 머물렀고 ‘들어봤고 내용도 조금 안다’고 응답한 비율은 24.5%였다.
“퇴근 후에는 날 찾지 말아줘”
◆일부 유럽 국가, 이미 노사 협약 체결 완료

그렇다면 해외는 어떨까. 독일·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이미 퇴근 후 업무용 메신저나 e메일 발송을 금지하는 내용의 노사 협약을 체결했고 이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프랑스 경영자총연합회와 노동조합은 2014년 4월 퇴근 후 e메일 발송 금지 협정을 맺었다. 13시간 초과 근무하는 특정 정보기술(IT) 분야 근로자들에게 e메일이나 메신저를 무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독일의 사례는 좀 더 구체적이다. 독일은 2014년 8월 업무 시간 이외에 e메일 전송을 금지하는 ‘안티스트레스(Anti-stress)법’ 입법을 추진했다. 이 법안은 독일 금속노조가 독일 정부에 입법화를 요청해 발의됐다.

해당 법안은 근로시간과 휴식 시간을 명확히 구분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규정하고 있고 최대 근로시간 초과 시 휴식 시간의 즉시 보상, 초과된 시간에 적합한 휴게 시간, 업무상 연락이 불가능한 주말의 충분한 보장 등의 내용을 담았다.

신 의원이 발의한 이번 법안은 근로기준법이므로 향후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국회에서조차 “실현하기가 어렵지 않느냐”, “처벌 조항이 없는데 과연 실무에서 따르겠느냐”는 등의 실효성 문제가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여 최대 관건은 환노위 위원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여부다.

젊은 직장인들의 염원을 담은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이 법안심사소위원회를 넘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henrykim@hankyung.com

[기사 인덱스]
-“퇴근 후에는 날 찾지 말아줘”
-신경민 의원 “기술의 발전을 오용하는 일 없어야”

시간 내서 보는 주간지 ‘한경비즈니스’ 구독신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