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줄기세포·유전자 가위…복제양 돌리가 남긴 '위대한 유산'
돌리 사후 생명공학 꽃피워
각국서 20종 넘는 동물복제 성공
돌리 만들어낸 복제 기술
난치병 치료 연구 밑거름으로


동물을 복제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많았다. 과학자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한 인구 증가로 식량난이 가중되자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을 대량 생산하는 낙농 혁명을 꿈꿨다. 처음 시도된 기술은 DNA나 RNA를 난자에 주입하거나 수정란을 인위적으로 분할해 똑같은 쌍둥이를 만드는 방식이다. 하지만 복제 성공률이 낮았다. 무엇보다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동물을 똑같이 복제할 수 없었다.

윌머트 박사는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와의 대담에서 소나 돼지 같은 동물이 아니라 양을 처음 복제한 이유에 대해 “값이 비싸고 세대 간 간격이 큰 소보다 훨씬 싸고 다루기 쉬웠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김지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 선임연구원은 “윌머트 박사가 처음 체세포 핵치환법의 가능성을 제기한 뒤 각국에서 소와 돼지, 양 등 다양한 연구가 경쟁적으로 시작됐는데 돌리가 가장 먼저 성공하면서 첫 복제동물이 됐다”고 말했다.
돌리는 1998년 새끼 암양 보니를 포함해 모두 여섯 마리를 출산했다. 보니는 세계 첫 복제양 엄마를 가진 덕분에 최초 복제양의 새끼가 됐다. 돌리가 태어난 뒤 1999년 한국에선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복제소 영롱이와 복제 젖소를 탄생시킨 데 이어 각국에서 소, 돼지, 개, 고양이 등 20종이 넘는 동물 복제에 성공했다. 미국 오리건대 과학자들은 인간과 가장 가깝다는 영장류인 원숭이를 복제 단계까지 만들었다.
돌리는 천수를 누리지는 못했다. 2001년 돌리를 돌보던 사육사는 돌리의 걸음걸이가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관절염이었다. 2년 뒤 심한 기침을 하던 돌리는 컴퓨터 단층촬영(CT) 영상을 촬영한 결과 폐에서 암세포가 발견됐다. 연구진은 돌리가 더는 고통받지 않도록 안락사하기로 결정했다. 2003년 2월14일 돌리는 여섯 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네이처는 20세기 과학사에 기념비적인 돌리를 추모해 이례적으로 부고 기사를 냈다. 돌리 사후 동물 복제기술은 발전을 거듭했다.
이 교수는 “미국 복제쥐 큐뮬리나는 일반 쥐 수명의 95%에 이른다”며 “기술이 발전하면서 복제동물과 일반 동물의 차이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국내 공항과 항만에선 15마리 복제 검역 탐지견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복제 동물을 공산품처럼 찍어내겠다는 과학자들의 꿈은 멀어졌다. 동물 복제에 들어가는 비용을 좀처럼 낮출 수 없기 때문이다. 100개 난자 중 복제 동물로 태어나는 비율은 5%에 미치지 못한다. 그 대신 돌리를 만든 생명복제 기술은 이후 배아줄기세포와 유전자 가위 등 난치병 치료와 관련된 바이오 연구를 촉발한 계기가 됐다.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 연구진은 2013년 태아 피부 세포를 핵이 제거된 난자에 융합시켜 인체 모든 세포로 자라날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었다.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교수가 iPSc를 만든 것도 난자를 활용한 연구에서 윤리 문제를 피해 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돌리의 시신은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에 기증돼 박제됐다. 박물관 측은 오는 8일 돌리 탄생 20년을 맞아 수장고에 보관 중이던 돌리 박제를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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