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소프트웨어 파워 부재, 대한민국
20세기 들어 출현한 억만장자의 대다수는 정보기술(IT) 분야 인물이었다. 포브스가 발표한 ‘2016년 세계 억만장자’를 보면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가 3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으며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그리고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이 나란히 5~7위에 올랐다. 대한민국 또한 부의 이동이 최근 활발히 이뤄지면서 자수성가형의 IT 분야 신흥부자가 늘었다.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대표가 4위, 김정주 NXC 대표가 6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소리가 들린다. 미래창조과학부는 3년째 ‘소프트웨어(SW) 제값주기’ 간담회를 열고 있다. 비슷한 성격의 이런저런 토론회가 창조경제를 국정 아젠다로 내건 이번 정부 들어 늘어났다. 그런데 현장은 SW 업체의 열악한 현실을 토로하는 ‘성토장’이 된 지 오래다. SW산업이 본격적으로 조성된 지 30여년이 흘렀지만 변한 게 없다. 제값을 달라는 SW 업계의 절규는 처절하다.

분리 발주가 정착되지 못하다 보니 프로젝트 전체 비용 중 용역 인건비나 하드웨어 구매비용에 밀려 SW는 저가 출혈 납품을 강요받고 있다. 납품 후 외국산 SW에는 평균 22%의 유지보수 요율을 적용하는 반면 국산 SW에는 8%대의 낮은 유지보수 요율을 적용하고 있다. 제품 도입 후 첫해를 무상기간으로 여기는 관행도 만연해 있다. 지식재산권 개념이 부족해 일부 기능 변경 요청만으로 발주자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다반사다. 대기업에 납품하려면 계열사 시스템통합(SI) 업체를 통과하는 통행료를 지급해야 한다. 무슨 건설업도 아닌데 재하도급 금지가 이제야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고, 기술평가가 무시된 최저가 낙찰 관행도 서서히 제동이 걸리고 있다.

대한민국 SW 생태계는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악조건을 다 모아 놓은 모습이다. 이렇다 보니 국산 SW 업체는 적당한 대가를 받지 못해 수익은 물론 연구개발(R&D) 등에 재투자할 여력도 없다. 그 결과 외국산 SW에 비해 성능 면에서 떨어지는 등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SW가 다가올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 것이란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SW산업 생태계의 악순환은 곧 국가경제 미래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이제는 거시적이고 대의적인 관점에서 SW의 가치를 인정하고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할 때다.

이영 < 한국여성벤처협회장 kovwa@kovw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