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공동 연구가 확대되면서 기초과학연구원(IBS)에만 178명의 외국인 과학자가 일하고 있다. 복잡계 자기조립연구단 소속 연구원들이 외국인 연구원과 함께 실험 방법에 대해 토의하고 있다. IBS 제공
국제 공동 연구가 확대되면서 기초과학연구원(IBS)에만 178명의 외국인 과학자가 일하고 있다. 복잡계 자기조립연구단 소속 연구원들이 외국인 연구원과 함께 실험 방법에 대해 토의하고 있다. IBS 제공
김상규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연구위원은 유전자 교정기술인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그간 규명되지 않은 식물 단백질의 기능을 알아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마치고 2014년 국내로 들어왔다. 하지만 귀국 전 고민도 많았다.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지도하던 학생을 그냥 두고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학생을 데려와 계속해서 지도할 수 있다는 IBS 측의 제안을 받고서야 마음 편히 귀국길에 올랐다.

김 연구위원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 가운데 상당수는 자리가 없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전신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을 지낸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국내로 돌아온 박사 가운데 상당수는 정보기술(IT)이나 기계공학 분야 전공”이라며 “한국은 지식기반산업이 없어 신약 개발, 소프트웨어 같은 혁신 분야 인재를 영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美 박사 10명 중 6명 귀국 의사 없어

[STRONG KOREA] 칠레보다 인재 유출 심한 한국…미국서 학위 받은 60% "귀국 안해"
정부와 과학계는 뛰어난 과학자 1명이 100만명을 벌어 먹이는 시대에는 고급 두뇌 확보가 관건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은 주요 선진국은 물론이고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칠레 말레이시아 터키 멕시코 같은 나라보다 두뇌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스위스국제경영개발원(IMD)이 지난해 말 발행한 ‘세계 인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두뇌유출지수는 평가 대상국 61개국 중 44위로 평가됐다. 이는 18번째로 두뇌 유출이 많이 되는 나라라는 뜻이다.

해외로 공부하러 나갔다 돌아오지 않는 이공계 인재가 많은 게 문제점으로 꼽힌다. 미국과학재단(NSF)이 발행한 과학기술지표에 따르면 2013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인 가운데 59.1%는 학위를 받은 뒤에도 미국에 계속 머물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계에 따르면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만 300~500명, 명문대가 모인 보스턴 주변에도 500여명의 한국 인재가 돌아오지 않고 현지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노리턴(no return) 현상의 표면적인 이유로 교수 선호 성향을 꼽는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미국에서 학부와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김영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선임연구원은 “대개 박사후연구원을 마친 인재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교수가 되길 희망한다”며 “한국엔 교수 자리가 많지 않지만 미국에는 교수 자리 외에도 다국적 회사나 거대 연구소 등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회가 많다”고 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한국 연구 풍토가 획일적이고 개성을 존중하지 않아 해외 경험을 한 젊은 인재와 맞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획일적 연구 풍토도 걸림돌

자녀 교육 문제도 고급 두뇌의 귀국을 막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치열한 입시전쟁을 치러야 하는 등 삶의 질이 떨어지는 한국으로 들어오길 원치 않는 배우자와 자녀의 입김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래부도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월 ‘제3차 과학기술 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을 확정, 과학기술 인재를 육성하는 방안 마련에 나섰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재를 2015년 180만명에서 2020년 220만명으로 40만명 더 늘릴 계획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 세계 톱 1% 과학자 300명을 유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133명을 영입했다. 출연연의 한 연구원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연구자 상당수가 노후를 불안해하는 건 마찬가지”라며 “연금제도 등 노후까지 생각하는 복지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