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마지막 프로젝트, 미생물
해마다 미국에선 2만9000명이 항생제 치료 과정에서 클로스트리듐 디피실 감염증에 걸려 목숨을 잃는다. 이 병은 건강한 성인 2~5%의 장 속에 살고 있는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이 항생제 복용 후 증가하면서 독소를 뿜어내 설사를 유발하는 치명적 감염증이다.

항생제 복용 후 장내 미생물군집이 바뀌고 미생물이 뿜어내는 물질이 비정상적으로 늘거나 줄면서 감염성 세균에 대한 저항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윤상선 연세대 의대 교수 연구진은 최근 항생제에 노출되면 기존 대장균과는 다른 유전자를 가진 독특한 대장균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콜레라균에 쉽게 감염된다는 사실을 알아내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소개했다.

사람 세포보다 10배 많은 미생물

연구진은 게놈 분석을 통해 미생물 집단에서 기존 대장균보다 활성 산소를 억제하는 유전자를 가진 대장균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유전자를 가진 대장균 때문에 콜레라 감염이 늘어난다는 점을 밝혔다. 항생제 복용이 늘면 장 속에 이 대장균이 증가하면서 콜레라 감염에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수많은 공생세균 중 특정 균주 한 종이 늘어날 경우 숙주 감염 저항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연구”고 말했다.

사람 몸 곳곳에는 100조개에 이르는 미생물이 산다. 이는 몸 안에 있는 세포 수(10조개)보다 10배 많고 인간 유전자 수보다 100배 많다. 미생물이 사람 몸속에서 살기 시작하는 건 신생아 때부터다. 주로 어머니의 몸속과 피부의 미생물이 아기에게 전해지며 수유를 통해 늘어나기도 한다. 사람이 점점 성장하면서 사람 장기와 피부 등에 사는 미생물은 다양해진다. 아무리 쌍둥이라고 해도 미생물 50%만 공유할 뿐이다.

사람과 공생을 택한 미생물은 장내에 세균이 침입하면 이와 싸운다. 하지만 미생물을 죽이는 항생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이런 면역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위와 십이지장, 소장, 대장에 사는 공생 미생물이 불균형해지면 아토피 피부질환, 염증성 장 질환, 대사증후군에 걸릴 수도 있다.

뚱뚱한 사람도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 때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또 뇌 속 미생물의 불균형이 우울증, 불안감, 정신분열, 자폐증, 파킨슨병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과학자들은 장내 세균을 조절하면 당뇨와 암은 물론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2 인간게놈 장내 미생물

사람의 성별, 나이, 먹는 음식 등을 분석하면 어떤 장내 미생물이 많이 살고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미생물의 정체와 효능을 밝혀내려는 연구가 시작된 건 한두 해 일이 아니다. 190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우크라이나 미생물학자 일리야 메치니코프는 유산균 일종인 락토바실러스균이 들어있는 요구르트를 마시고 효능을 살폈다.

장내 미생물에 대한 관심이 다시 시작된 건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이 2006년 12월 뚱뚱한 사람과 마른 사람의 장내 세균이 따로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하면서다. 연구진은 장내 세균을 없앤 생쥐에게 비만 생쥐의 장내 세균을 넣은 결과 2주 만에 체지방이 50% 가까이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

미국은 2007년부터 ‘인간미생물군집프로젝트(HMP:human microbiome project)’를 시작했다. 인간의 DNA 유전정보 전체를 한꺼번에 해독한 인간유전체 프로젝트처럼 미생물군집 전체를 대상으로 DNA를 구성하는 아데닌(A) 사이토신(C) 구아닌(G) 티민(T) 등 네 가지 염기가 배열된 순서를 밝혔다. 2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HMP는 미국인 242명의 코와 피부, 입, 소장 등 18개 신체 부위에서 미생물을 채취해 유전체 분석을 마쳤다. 이렇게 발견된 장내 미생물 종류는 무려 5177개가 넘었고 160여개의 미생물이 사람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발견됐다. 이를 알아내면 인간 몸속에서 일어나는 각종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장내 세균 전체를 뜻하는 미생물군집을 ‘제2의 인간게놈’으로 부르는 이유다.

美 정부·민간 미생물 투자 러시

미생물군집 연구는 미국에서 민·관을 떠나 가장 뜨거운 연구 분야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지난 13일 임기 마지막 대형 과학프로젝트로 ‘국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미생물군집)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농작물과 소, 돼지 등에 영향을 미치는 토양미생물을 비롯해 감염병과 정신질환, 비만에 영향을 미치는 미생물, 우주인에게 미생물이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이 사업에는 2년간 1억2100만달러(약 1440억원)가 투자될 예정이다.

민간 분야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 멜린다 게이츠가 세운 빌앤드멜린다재단은 4년간 1억달러를 인간과 농업 미생물 연구에 투자하기로 했다. 다국적 제약사인 로슈와 화이자도 장내 미생물을 활용한 약물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