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캘빈 쿨리지 대통령 이래 88년 만에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한다. 미국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최신호는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행에 앞서 관타나모 해군기지를 세계적 생태 연구지로 바꿔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제안을 소개했다.

110년간 발길 안닿은 생태연구소

"폐쇄하는 미국 관타나모 군수용소, 세계적 생태 연구기지로 바꾸자"
관타나모 미국 해군기지는 남북이 대립하는 한반도 비무장지대(DMZ)와 함께 마지막 남은 반목과 갈등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9·11 테러 이후 전 세계에서 체포한 테러 용의자를 구금한 수용소로 활용하면서 더 악명을 떨쳤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과 쿠바가 화해 무드로 전환한 이후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쿠바 관타나모 군사 수용소를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생태 연구자들은 이 지역에 세계적 생태연구소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160㎢에 이르는 관타나모만(灣)은 거대한 해양 생태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1903년 미국이 쿠바로부터 강제로 조차(租借)한 뒤 110년 넘게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다.

만 주변에는 4600㎞에 이르는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지구온난화로 줄고 있는 맹그로브 나무와 희귀 산호들이 대거 서식하고 있다. 해군기지 주변에서는 멸종위기종인 이구아나를 비롯해 희귀 조류와 식물 등 80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오랜 기간 어업활동이 제한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도 발견되고 있다. 미국 자연사박물관 연구진은 최근까지 관타나모 기지 인근에서 북아메리카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51종의 나비를 발견해 국제 사회에 보고했다.

미국은 군 감옥 폐쇄 후에도 쿠바에 조차지를 넘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지난해 10월 생태환경의 핫스폿으로 주목받는 관타나모만의 환경을 보호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생태학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 방문 기간에 관타나모만의 보존과 연구시설 설립에 대한 의지를 밝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세계적 생태보존 전문가인 존 로먼 버몬트대 교수는 “관타나모만 지역에 친환경 연구시설이 들어서면 세계 최고의 생태연구소인 우즈홀해양연구소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해군관계자들이 쿠바 관타나모 기지 앞바다에서 태어난지 3일 된 해우(海牛)를 보살피고 있다.
미국 해군관계자들이 쿠바 관타나모 기지 앞바다에서 태어난지 3일 된 해우(海牛)를 보살피고 있다.
DMZ 등도 생태 연구 활용해야

과학자들은 관타나모 기지처럼 남북을 가로지르는 DMZ도 세계적 생태 연구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녹색연합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정전협정 당시 992㎢이던 DMZ는 2013년 570㎢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하지만 60년 넘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서 고라니, 노루, 멧돼지, 산양, 사향노루, 반달가슴곰이 사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생태 공원으로 변모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한반도 전체에 서식하는 조류와 포유류, 식물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군 기지나 버려진 군 사격장도 생태 연구지로 주목받고 있다. 과학자들은 주로 오염된 토양을 되돌리는 다양한 생태 복원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군 사격장은 버려진 포탄 등에서 흘러나온 중금속 성분으로 심각한 오염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연구진은 전국 29개 주한 미군기지를 조사한 결과 26개 기지가 오염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장기간 군용차량을 운행하며 폐유 등을 무단 방류하면서 땅이 오염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복원 방식 가운데 자연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에 주목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여러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해바라기와 겨자 식물은 땅속 납 성분을 잘 흡수하고, 말냉이속 식물은 아연과 니켈, 카드뮴을 잘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다. 특히 호랑버들은 소나무나 아카시 나무보다 아연을 40배 이상 잘 흡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