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대결] '인간의 美' 보여준 이세돌…승부보다 빛났던 '도전'
[ 최유리 기자 ] 승부보다 빛났던 것은 인간만의 도전정신이었다.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AI) 알파고와 겨룬 '세기의 대결'에서 패했지만 아름다운 끈기와 희망을 보여줬다. 이번 대국의 진정한 승자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15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제5국은 이 9단의 불계패로 마무리됐다. 이틀 전인 4국에서 이 9단이 알파고를 꺾었지만, 첫 승은 마지막 승이 됐다. 결국 1승4패로 5번의 대국은 마무리됐다.

1국부터 쉽지 않았다. '인류 최강'인 이 9단이 알파고에게 충격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알파고는 대국 중반 실수를 연발하기도 했지만 막판 뒤집기에 나서며 첫 대국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2국에서 분위기 반전을 노렸으나 결과는 연패였다. 1국과 달리 안정적인 모습으로 알파고의 변칙적인 수에 대응했으나 시간 싸움에서 밀렸다. 알파고는 창의적인 수로 이 9단을 흔들며 파죽의 연승을 이어갔다.

3국에서도 알파고가 승리를 가져왔다. 알파고가 큰 집을 형성했지만 이세돌 9단의 창의적인 전략으로 대국은 혼전을 보였다. 하지만 패싸움 끝에 알파고가 우세를 점하며 대국에서 승리를 거뒀다.

3연패를 당했지만 좌절하진 않았다. 동료 바둑 기사들과 앞선 대국을 복기하며 새로운 전략을 짰다. 대결 규칙 자체가 이 9단에게 불리하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인간의 패배'가 아닌 '이세돌의 패배'로 돌리며 자신을 낮췄다.

반전은 4국에서 일어났다. 이 9단이 마침내 알파고를 꺾고 1승을 거뒀다. 슈퍼컴퓨터 1202대가 연결된 최신 알고리즘 기술로 무장한 알파고를 이 9단이 무너뜨리자 '인간 승리'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9단은 4국이 끝난 이후 "이번 승리는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맞바꾸지 않겠다"며 "한 판을 이기고 이렇게 많이 축하받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라고 활짝 웃었다.

이 9단의 도전정신은 마지막까지 빛났다. 제5국에서 스스로 흑돌을 잡았다. 승부의 유리함보단 새로운 도전을 택한 것. 백돌을 잡을 경우 7.5집의 덤을 가져 유리할 수 있지만 이미 백돌로 승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 대국은 알파고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이 9단은 대국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 9단은 5국이 끝나고 "승부가 끝나서 아쉽다"면서 "그래도 이번 대국에서 바둑을 마음껏 즐겼다"고 평가했다.

이 9단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지만 응원해주신 여러분께 감사하다"면서 "구글에서 재대결을 요청한다면 당연히 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유리 한경닷컴 기자 now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