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 첫 대국이 9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렸다. 흑을 잡은 이 9단(오른쪽)은 중반까지 숨 막히는 접전을 벌였지만 알파고에 무릎을 꿇었다. 아자황 딥마인드 연구원(왼쪽)이 알파고를 대신해 바둑을 뒀다. 구글 제공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 첫 대국이 9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렸다. 흑을 잡은 이 9단(오른쪽)은 중반까지 숨 막히는 접전을 벌였지만 알파고에 무릎을 꿇었다. 아자황 딥마인드 연구원(왼쪽)이 알파고를 대신해 바둑을 뒀다. 구글 제공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9일 열린 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의 첫 대국에선 인공지능이 심리전에서 이겼다고 평가했다. 문 교수는 “이 9단이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인공지능에 심리전에서 밀렸다”고 평가했다. 인공지능의 자가 학습 기능이 임기응변에 강한 인간에 유연하게 대응할 정도로 발전하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된 바둑 고수의 발을 꼼짝 못하도록 묶었다는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밤낮을 가리지 않은 실전 같은 훈련 덕분이다. 문 교수는 최근 알파고 실력이 월등히 향상된 정황이 인터넷 바둑사이트 타이젬에서 포착됐다고 말했다. 최근 타이젬에 ‘딥마인드(deepmind·알파고 개발회사 이름)’라는 ID를 쓰는 9단 실력자가 17승 3패를 거뒀다는 것이다. 구글 측은 알파고가 아니라 연구진 개인 아이디라고 주장했지만 문 교수는 구글에 9단 실력을 가진 연구자가 있을 리 없는 데다 기보에도 인공지능일 가능성이 높은 실수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알파고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실력을 키웠다.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구글은 별도로 개발한 알파고1, 알파고2 등 자신들끼리 시합을 통해 능력을 키웠다”며 “자신과 비슷한 인공지능이 자신을 공격하게 하는 방식으로 약점을 보완했다”고 말했다.
[알파고 쇼크] 세계 최고수 꺾은 인공지능…형세 판단·직관력 인간 뛰어넘었다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알파고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바둑은 판세를 유리하게 이끌 다음 수가 놓일 착점을 계산하는 데 필요한 경우의 수가 많아 판세 판단이 어렵다. 이 9단과 같은 세계 최고수와 대결하기 위한 지능을 갖추려면 방대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학습해야 한다. 알파고 역시 16만판에 이르는 바둑 기보 빅데이터를 흡수하면서 이런 약점을 보완했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공지능의 우직함도 승리 요인이라는 평가가 많다. 사람은 초반에 밀리면 위축되거나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변칙적으로 두는 경향이 있지만 알파고의 선택은 달랐다. 질 때 지더라도 최선의 착점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은 다음을 생각하며 손해를 볼 때가 있지만 인공지능은 매순간 최선을 다해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영성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은 “알파고의 알고리즘은 지고 있을 때조차 최선의 수를 두도록 설계된 게 특징”이라며 “알파고는 최선의 수를 끊임없이 쌓아 상대를 이기는 전략을 쓴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구글이 공개하지 않는 한 알파고의 알고리즘이 어느 정도 개선됐는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간 발견되지 않던 직관과 대담함, 공격성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드러났다. 이정원 ETRI 선임연구원은 “알파고에는 상대가 공격을 걸어 오면 위축되기보다는 공격으로 맞서는 알고리즘이 있는 것 같다”며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이 예상 밖으로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감동근 교수는 “단순히 기보를 늘린다고 이처럼 인공지능이 발전했을 것 같지는 않다”며 “구글만이 알고 있는 새로운 알고리즘을 추가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공지능은 장기간 사람과 대적하면 사람보다 유리한 위치에 오른다. 사람은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실수가 일어나지만 인공지능은 계산할 경우의 수가 줄어 정확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국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두석 KIST 선임연구원은 “대국 후반부는 인공지능의 장점인 고도의 계산 능력을 발휘하기 가장 좋은 조건”이라며 “예술처럼 창의력이나 영감이 필요한 분야가 아니면 인공지능이 사람을 앞설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인공지능과 로봇 발전 등으로 앞으로 5년 동안 일자리 510만개가 사라질 것이라는 다보스포럼의 예상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