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허라미 기자 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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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어느 날, 직장인 홍길동 씨는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 치료비로 쓸 급전이 필요했다. 바쁜 업무 탓에 은행에 갈 시간이 없는 홍씨는 스마트폰을 꺼내 우리은행 ‘위비뱅크’에 접속했다. 간단한 본인 정보를 입력하고 1000만원의 신용대출을 신청하자 한 시간 만에 계좌에 입금됐다는 메시지가 스마트폰에 뜬다.

두 달 뒤, 홍씨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기로 했다. 은행별 대출금리를 알아보기 위해 ‘금융상품 한눈에’(금융상품 통합비교공시) 사이트에 접속했다. 30분 검색 끝에 시중은행보다 0.5%포인트 금리가 낮은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 주택대출을 받기로 했다.

스마트폰으로 대출 받고 컴퓨터가 투자상담 해주고
연말 보너스 시즌인 12월. 1000만원의 성과급을 받은 홍씨는 어떻게 돈을 굴릴까 고민하다가 NH투자증권의 ‘QV로보어카운트’에 접속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맞춤형 투자 상담을 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다. “홍길동 고객님에겐 연금저축과 주가연계증권(ELS)에 분산 투자할 것을 권유해 드립니다.”

퇴근하고 집으로 향하는 홍씨 머릿속에 이런 질문이 맴돈다. “내가 은행 창구에 간 게 언제였더라?”

가상으로 그려 본 ‘금융생활백서’다. 먼 미래의 일은 아니다. 몇몇 서비스를 빼면 지금 당장 홍씨와 같은 경험을 누릴 수 있다.

금융이 정보기술(IT)이라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 IT를 활용한 신개념 금융서비스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과거 은행 창구에 가야 가능했던 금융서비스를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제공받을 수 있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변화의 속도는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앞으로 수년 내 은행에 갈 일이 없어지는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현재 나오고 있는 IT와 결합한 신개념 금융서비스는 다양하다. ‘모바일뱅킹’이 대표적이다. 계좌이체·송금 위주였던 인터넷뱅킹과 달리 모바일뱅킹은 스마트폰으로 계좌이체는 물론 대출신청까지 가능한 서비스다. 우리은행이 지난해 5월 위비뱅크를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신한은행은 써니뱅크, KEB하나은행은 1Q뱅크, 기업은행은 i-ONE뱅크 등을 선보였다. 일부 은행은 모바일뱅킹을 통해 펀드 연금저축 등의 가입 상담까지 해주는 서비스도 내놓는 추세다.

생체정보를 활용한 본인 인증도 빠르게 상용화되는 추세다. 이른바 비(非)대면인증 시스템이다. 지금까지는 계좌를 개설하려면 무조건 은행에 들러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을 제시해 본인임을 확인받아야 했다. 하지만 생체정보를 기반으로 한 비대면인증이 활성화되면 집 안에서 간편하게 계좌를 만들 수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디지털키오스크라는 무인점포를 통해 손바닥의 정맥 정보를 통해 본인 인증을 하고 계좌개설까지 가능한 서비스를 내놨다. KEB하나은행도 조만간 지문 인증을 통해 각종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상용화할 예정이다. 우리은행 등은 홍채 인증 방식을 곧 내놓을 계획이다.

인터넷전문은행도 출범한다. 카카오뱅크(한국투자금융지주·카카오 주도 컨소시엄)와 K뱅크(KT·우리은행 주도 컨소시엄)는 지난해 말 사업인가를 받은 뒤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은행 사업을 벌인다. 두 은행은 기존 은행과 달리 온라인·무인점포 위주로 사업구조를 운영한다. 송금·대출은 물론 빅데이터를 활용한 투자 상담 등의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엔 로보어드바이저라는 IT 결합 서비스도 나왔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투자자 성향, 목표 수익률, 자금 성격 등을 분석해 맞춤형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 주는 서비스다. 은행이나 증권사의 프라이빗뱅커(PB)들이 해주던 서비스를 컴퓨터가 대신해 주는 것이다. 이 서비스가 대중화하면 고액 자산가 대상의 PB 서비스를 일반 소비자들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