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천자칼럼] 아래아 한글 1.0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 승용차인 현대자동차 포니1, 한글 기계화를 앞당긴 공병우의 세벌식 타자기, 금성사의 첫 진공관식 라디오와 흑백 텔레비전, 처음 나온 세탁기와 냉장고, 집채만한 1960년대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110여년 전의 국가표준 도량형 기구…. 모두 문화재로 등록된 근현대 산업기술 유물이다. 이름만 들어도 빛바랜 추억의 사진첩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이 중 ‘아래아 한글 1.0’은 여러모로 특이하다. 우선 소프트웨어로 문화재가 된 최초의 사례다. 1989년 4월에 첫선을 보였으니 인터넷 보급도 미미하던 시절이다. 조합형 문자코드로 PC에서 한글을 완벽히 표현하도록 했다. 외국 프로그램을 우리말로 옮겨놓은 수준의 다른 소프트웨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개발 주역은 대학생들이었다. 당시 서울대 컴퓨터연구회 출신인 이찬진(전 한글과컴퓨터 대표), 김택진(엔씨소프트 대표) 등 4명. 이 ‘무서운 아이들’의 열정 덕분에 아래아 한글은 대기업들의 자체 워드프로세서를 제치고 승승장구했다.

장점은 IBM 호환 PC라면 어디서든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수학기호와 영어, 일어, 독일어 등도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가격까지 쌌다. 1990년에 출범한 한글과컴퓨터(한컴)는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자존심이었다. 1994년작 한글 2.5는 서울 정도 600년 기념 타임캡슐에 묻혔다. 이어 한글오피스 96, 한글워디안, 한글 2004, 한글2010 등이 잇따라 나와 시장을 석권했다.

그러다 외환위기 때 돈이 묶인 한컴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투자를 받는 조건으로 아래아 한글을 포기한다는 충격선언을 했다. 위기의 최대 원인은 불법 복제였다. 국민 소프트웨어가 외국 업체에 넘어간다는 소식에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아래아 한글 살리기 운동에 힘입어 한컴은 MS의 투자금을 포기하고 국민주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런 아래아 한글이 문화재로 등록까지 됐지만, 정작 한글1.0 패키지(5.25인치 플로피디스크, 설명서, 박스) 초판 실물은 찾을 수가 없다. 연구원들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허사였다. 개발자들도 갖고 있지 않았다. 저작권 인식이 없어 대부분이 불법 복제였던 데다 아래아 한글 1.2와 1.5 버전이 금세 나오면서 1.0 버전이 없어진 것이다.

결국 한글박물관이 포상금을 걸고 구매공고를 내기로 했다. 등록문화재 가격이 2000만~5000만원이라니 솔깃하기도 하겠다. 1970년에 나온 첫 흑백TV가 5000만원, 포니1은 7000만원이었다지 아마.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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