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 플리토 대표(맨 오른쪽)와 직원들이 집단지성을 이용한 모바일 번역 프로그램인 플리토를 소개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이정수 플리토 대표(맨 오른쪽)와 직원들이 집단지성을 이용한 모바일 번역 프로그램인 플리토를 소개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구글 검색이 일상화하면서 영문 사이트에서 정보를 찾아야 할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구슬도 꿰어야 보배. 영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검색 엔진도 소용이 없다.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지만 오역이 적지 않다. 부족한 영어 실력을 탓해 보지만 소용없는 일. 이런 상황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번역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플리토’가 제격이다.

◆집단지성으로 번역 고민 해결

플리토는 한마디로 ‘번역 지식인’이다. 네이버의 지식인 서비스처럼 사용자가 번역을 요청하면 전문가들이 번역된 결과물을 실시간으로 보내준다. 집단지성의 힘을 정보기술(IT)로 구현한 서비스다. 외국어 능통자가 번역하기 때문에 구글 번역기 등에서 흔히 발생하는 오역이 거의 없다. 사용자가 원문을 올리고 번역료 명목의 포인트를 걸면 해당 외국어 능통자에게 요청이 들어간다. 보내준 번역문이 선택되면 번역자는 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포인트는 기프티콘이나 페이팔 등으로 전환할 수 있고 기부도 가능하다. 외국어에 능통하다면 자투리 시간에 플리토를 통해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늘고 있지만 직업 번역가는 그중 1%에 불과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매미 벨로 시작된 발명가의 꿈

이정수 플리토 대표는 쿠웨이트에서 태어나 사우디아라비아와 영국 미국 등지를 돌며 자랐다. 어릴 때 꿈은 발명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제학교에 다니던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만들기 숙제가 있었다. 그는 테니스공을 반으로 자른 다음 그 안에 살아있는 매미를 넣고 빈 공간을 모래로 채워 학교 벽에 붙였다. 공을 누르면 모래의 압박에 매미가 힘차게 울었다. 그는 교사에게 ‘자연산 초인종’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교사였다면 경악하며 아이를 다그쳤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영국인 교사는 꼬마 발명가의 아이디어를 치켜세웠다. 이 대표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을 즐기게 된 계기다.

외국어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긴 외국생활의 영향이다. 이 대표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언어 문제로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잦았다”며 “언젠가 언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통곡의 벽에서 창업 다짐

열여섯 살에 한국에 온 그는 대원외고를 거쳐 고려대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는 영어 강의가 많았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영어 자료를 번역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흔쾌히 친구를 도왔다. 가끔은 답례로 밥도 얻어먹었다. 소문을 들은 다른 친구들의 부탁이 이어졌다. 요청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힘이 달렸다. 집단지성에서 답을 찾았다. 아예 요청사항을 서버에 올리도록 하고 다른 친구들도 함께 번역할 수 있도록 했다. 플리토의 원형이 된 웹 기반 번역 서비스 ‘플라잉케인’의 시작이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오래 걸리는 번역 시간 탓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의 가능성을 본 SK텔레콤이 사내 벤처를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조건으로 이 대표를 영입했지만 업무가 많아 벤처 운영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출장 갔던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 앞에서 마음을 굳혔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동료 두 명과 함께 회사를 그만두고 2012년 플리토를 창업했다.

이듬해 이스라엘 정부가 주관한 ‘스타트 텔아비브’ 대회에 한국 대표로 선발돼 이스라엘에 갔다. 1년 만에 다시 통곡의 벽 앞에 선 이 대표는 다짐했던 대로 플리토 창업가가 돼 있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번역 시간을 단축한 것이 성공 요인이다. 2013년 플리토는 한국은 물론 스위스 대회까지, 참가한 모든 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을 휩쓸었다. 현재 플리토는 170개국에서 350만명이 이용 중이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