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행부 대체수단 없이 강행…예고된 혼란
예외인정 안되면 금융사 업무마비·고객 불편
업계요구 수용땐 개정법 '누더기' 비난 직면
[주민번호 수집 금지 '초비상'] 휴대폰요금 자동이체 4400만명, 지로로 은행에 직접 내야할 판

[주민번호 수집 금지 '초비상'] 휴대폰요금 자동이체 4400만명, 지로로 은행에 직접 내야할 판

안전행정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따르면 기존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을 허용하는 법령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포함해 모두 866개에 달했다.

이를 근거로 기업들이 요청하는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 예외를 모두 인정해주면 ‘개인정보 보호’라는 법 취지 자체가 무색해진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대체수단도 없이 주민등록번호의 수집·이용을 전면 금지하면 업계 혼란과 소비자 불편이 불가피하다.

◆“자동이체·대출 주민번호 필수”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취지는 개인정보 침해사고의 핵심인 주민등록번호 활용을 중단하고 대체수단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생년월일과 성별 출신지역을 알 수 있는 주민등록번호는 유출되면 사실상 모든 개인정보가 빠져나간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본인인증 대체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주민번호를 수집·이용할 수 없게 되면 기업들은 고객서비스 업무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대표적인 게 요금 자동이체 서비스다. 통신 3사와 한국전력 도시가스사업자 렌털업자 후원재단 등은 고객으로부터 요금을 자동이체 받으려면 주민번호를 확보해야 한다. 금융실명제법에 따라 은행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갈 때마다 실제 명의(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관계자는 “통신 3사의 이동통신 이용자 5100만명 중 87%에 달하는 4400만여명이 자동이체로 요금을 내고 있다”며 “통신사가 예외사업자로 지정되지 않으면 고객 불편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사와 캐피털사, 대부업체 등의 대출 업무도 마비될 수 있다. 대출 신청자의 신용등급과 기존 대출거래를 확인하려면 주민등록번호가 필수적이지만, 수집·이용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 보험사 증권사는 금융실명제법의 금융거래에 대한 해석을 확대하면 주민등록번호를 수집·이용할 수 있을 전망”이라며 “문제는 여신전문금융법 적용을 받는 카드사 캐피털사 대부업체 등은 주민번호 이용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도 연체된 전기요금을 받으려면 채권 확보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이때 고유식별번호로 주민등록번호 외에는 쓸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주민번호 대체수단 마련 급선무

안행부는 지난해 8월 개인정보보호법이 개정된 뒤 1년이란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마땅한 대체수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안행부는 가입과 인증 절차가 복잡해 이용률이 낮은 아이핀 보급만 홍보하다가 지난 2월에서야 뒤늦게 주민등록 ‘발행번호’ 도입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주민번호 대체 수단 마련이 늦어지면서 기업들도 본인인증 시스템 개선을 머뭇거리고 있다. 기업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대안 제시가 안된 상태이기 때문에 무턱대고 본인인증을 위한 자체 시스템부터 마련하긴 어렵다”며 “자칫 나중에 다시 뜯어고쳐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은행 등 예외인정을 받은 사업자와 그렇지 않은 사업자 간 주민등록번호 사용을 놓고 빚어질 수 있는 혼선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며 “46년간 써온 본인인증 수단을 없애고 1년 만에 기업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안행부는 예외 조항이 적용되는 기업·기관의 수요조사에도 늑장을 부렸다. 안행부는 각 부처에 오는 30일까지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필요한 수요를 알려달라고 공문을 보냈다.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을 허용하는 법령도 6월 말까지 다시 전수조사할 예정이다. 뒤늦게 예외 인정을 못 받은 사업자는 8월7일까지 새 시스템을 만들 방법이 없다.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는 “정부도 기업도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다”며 “차라리 법 시행을 미루고 주민번호 대체수단을 먼저 마련하는 게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말했다.

김보영/장창민 기자 w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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