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갤럭시S5가 모습을 드러내자 부품사들의 수익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첨단 부품을 만들면 비싸도 사주던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이번엔 합리적 가격의 꼭 필요한 부품만 골라 장착해서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판매량을 늘리겠다는 전략이지만, 부품사 입장에선 매출과 수익성이 동시에 악화될 처지에 놓였다.

삼성전자가 25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공개한 갤럭시S5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나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주요 부품의 스펙이 갤럭시S4에 비해 비슷하거나 별달리 개선되지 않았다.

[단독] 삼성 갤럭시S5 스펙 뜯어보니…부품사 '배고플 날들'이 보이네
AP는 예상되던 64비트 AP 대신 기존 32비트 제품이 쓰였다. 애플 아이폰5S에는 64비트 AP가 들어가 있다. 클럭속도도 2.5GHz 쿼드코어(LTE용)로 갤럭시S4의 2.3GHz 쿼드코어와 비슷하다. 메모리의 경우 3G D램 채택이 유력했으나, 갤럭시S4와 같은 2G D램이 들어갔다. 작년 9월 출시된 갤럭시노트3(3G D램)와 비교하면 줄었다. 낸드 플래시도 16G, 32G를 기본으로 장착하는 데 그쳤다. 디스플레이는 크기가 5.1인치로 갤럭시S4의 4.99인치보다 0.11인치 커진 데 그쳤으며 해상도는 풀HD 슈퍼OLED로 똑같다.

즉 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AP, 메모리, 디스플레이가 달라진 게 없는 것. 눈에 띄는 부품은 1600만 화소 카메라다. 다만 여기도 LG전자가 G2에 탑재한 광학적 손떨림방지기능(OIS)이 들어가진 않았다. 케이스 소재도 여전히 금속이 아닌 플라스틱이다.

남대종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갤럭시S5는 메모리나 디스플레이와 같은 하드웨어 측면에서 전 모델보다 많이 개선됐다고 느끼기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갤럭시S 시리즈가 애플 아이폰과 비교해 원가가 높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원가를 절감한 만큼 출시가도 낮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프리미엄 폰 시장의 포화로 첨단 부품을 써 값비싼 스마트폰을 만드는 것보다, 가격을 낮춰 판매량을 늘리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부품사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통상 전자부품은 시간이 지나면 값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새로운 첨단 부품을 개발해 부가가치를 높인다. 그러나 이번에 갤럭시S5에는 이미 범용화된 부품들이 장착돼 이익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진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4분기 갤럭시S4의 예상치 못한 판매 감소로 재고가 증가하면서 부품사들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상태다. 갤럭시S4에 카메라모듈과 진동모터,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등을 납품하는 삼성전기는 작년 4분기 영업적자 359억원을 냈으며, 배터리를 공급하는 삼성SDI도 556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케이스를 만드는 제일모직도 93억원의 손실을 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전분기보다 89% 줄어든 영업이익 1100억원을 기록했다.

이들은 이달 말부터 갤럭시S5 부품 생산에 본격적으로 돌입한다. 그러나 낮은 주문 가격으로 인해 실적 개선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증권사들은 삼성전기와 삼성SDI가 1분기 100억원 안팎의 소폭 영업흑자를 내는 데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계열사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소 협력사들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한 삼성전자 모바일 협력사 대표는 “새 먹거리가 없는 부품업체들은 외형 성장은 물론이고, 수익성 확보도 쉽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조성은 삼성증권 연구원은 “부품사들도 중저가 휴대전화 시대에 대비해 원가 혁신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석/김병근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