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효진 기자 ] 2007년 세계 최고 디자인스쿨로 꼽히는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에 입학한 후 2009년 명품 브랜드인 톰포드(Tom Ford) 인터내셔널 홍보 마케팅팀에서 활약했다. 당시 브래드 피트와 브루스 윌리스, 톰 행크스 등 헐리웃 스타들의 스타일링을 담당했다.

[스타트업! 스타⑨] 군고구마 팔던 대학생, 50억 대박 나더니…하형석 미미박스 대표의 '끝없는 도전'
그는 2002년에만 해도 공대생 신분으로 군고구마 장사를 했고, 쇼핑몰에서 운동화를 판 적도 있다. 고생을 사서 하는 청년이었다. 군대에서는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자원해 8개월간 복무하기도 했다. 모두 하형석 미미박스 대표이사(31)가 종횡무진한 기록들이다.

얼핏 연결고리가 약해보이는 그의 경험들은 '미미박스'에서 맞물리고 있다. 하 대표는 국내 최초로 정기구독형 화장품 박스인 '미미박스'를 성공적으로 정착 시킨데 이어, 내년 1월 1일부터는 미국 시장에서 두 번째 도전에 나선다. 특유의 '무대뽀' 정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 화장품 '쇼핑' 아닌 '구독' 한다

"한 번도 경쟁사를 염두에 둔 적 없다" "미국 시장에 대한 사전 조사는 무의미 하다"

하 대표는 실제 행보 만큼 발언도 거침이 없다. 그는 2012년 2월 뷰티 화장품 서브스크립션 커머스(subscription commerce)라는 생소한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미박스'를 설립했다. 고객이 한 달 1만6500원을 내면, 7만~8만원 상당의 '신상' 화장품 박스를 집으로 보내준다.

사업 초기 자본금은 3500만원에 불과했지만, 1년 만에 연 매출 13억원을 달성했다. 올해 예상 매출은 약 50억원이다. 올 10월 기준으로 회원 수는 18만명을 넘었고, 지금까지 판매된 미미박스 개수만 25만개다.

비결은 화장품이 아니라 서비스를 판매하는 데 있다. 미미박스는 현재 화장품 브랜드 430여개와 제휴를 맺고, 화장품을 무료로 받아온다. 대신 제휴 브랜드에 20페이지 주간보고서와 110페이지에 달하는 월간 보고서를 보내준다. 고객의 연령, 지역, 피부타입 등 제휴사가 원하는 정보를 빼곡히 담았다.

고객들은 뷰티 전문가가 고른 신상 화장품들을 매달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어 열광한다.

하 대표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난 미국 병사로 인해 패션과 마케팅 분야에 눈을 뜨고, 2011년 소셜커머스 티켓몬스터의 뷰티 팀장을 거치며 익힌 노하우가 집약된 작품이다.

◆ 미미박스 "응답하라! 미국"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또 하나의 스타트업을 만든다는 각오"라며 두 번째 모험에 나섰다.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미미박스 트래픽을 분석해보니 한국 다음으로 미국에서 이용률이 높더라고요.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진 것 같습니다. 실제 이사 5명이 함께 미국에 가서 아울렛 등을 구경해보니 성공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국 진출은 이사진의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지난 9월 미국에서 예산 150만원을 들인 시범 사업을 한 결과, 한 달 만에 거래금액이 1000만원 발생하기도 했다. 미국 시장의 성공 가능성을 엿본 셈이다.

"단일 제품 중에서는 국내 화장품 업체가 생산한 비비크림이 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코스맥스, 한국콜마 등 뛰어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ODM(제조자설계개발생산) 업체도 많고요. 전 세계에서 화장품 브랜드를 한국 만큼 잘 만들 수 있는 곳은 드뭅니다"

하 대표는 미미박스의 미국 시장 진출이 갖는 의미도 특별하다고 자신한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 수를 세어보니 1800개가 넘더라고요. 그 중 약 1000개 화장품 회사가 해외 사업팀이 없어 글로벌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 업체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가능성을 알아본 한 해외 유명펀드는 최근 미미박스에 투자를 단행했다. "미팅 때 한 투자자가 저에게 묻더라고요.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쥬커버그가 망하는데 베팅할 수 있냐고요. 저는 물론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투자자는 미미박스도 같은 이유로 투자를 결정했다고 확신을 심어줬습니다"

하 대표는 이달 말 최고기술경영자(CTO), 디자이너, 프로덕트 매니저 등 핵심 인력 3명과 함께 출국한다. 미국 뉴욕으로 곧장 날아가 사무실을 꾸릴 예정이다.

◆ '한국 미미' vs '미국 미미' 대결 시작된다

사실 미국 시장에는 서브스크립션 커머스의 시초로 알려진 '버치박스'가 자리잡고 있지만, 하 대표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가 경쟁자로 꼽는 대상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하 대표는 앞으로 미미박스 한국 지사 대(對) 미국 지사의 대결을 펼칠 계획이다. 미국 지사는 4개월 내 손익분기점(BEP) 달성이 목표다. 파슨스 디자인스쿨 재학시절부터 알고 지낸 현지 홍보대행사 관계자들과 미국 유명 연예인들이 홍보에 도움을 주겠다고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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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한 명당 평균 구매단가가 2만2000원~3만2000원 사이입니다. 반면 미국에서 한 달 동안 시험해 본 결과, 평균 구매단가가 10만원으로 껑충 뜁니다. 시장 규모가 다르고, 매출 단위도 큰 만큼 성장세가 가파를 것으로 봅니다."

국내에서는 쇄신 작업이 한창이다. 이달에는 본사를 서울 강남구 논현역 부근으로 이전했다. 벌써 10번째 이사다. 직접 운영하는 미미박스 물류창고도 근방에 있다.

"직원이 초창기 3명에서 58명까지 급속도로 늘어난데다 이사 만큼 분위기를 바꾸는 데 효과적인 방법도 드문 것 같아요. 또 하나, 매달 조직 구성에 변화를 줍니다. 한 때 이사 5명을 한 방에 몰아넣고, 하루에 10개 이상 결정안을 내라고 한 적도 있어요. 그 만큼 치열하게 비즈니스 전략을 고민합니다."

하 대표는 미미박스가 성장하지 않으면 직원 모두 비전을 잃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본다. 때문에 내년에는 2배 속도로, 내후년에는 4배 속도로 성장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분명한 것은 내년에는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할 것이고요, 팀 워크는 더욱 좋아질 겁니다. 또 미국이라는 좋은 시장에 진출하게 됐고요. 직원을 채용할 때 4번째로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미미박스가 삼성이나 LG와 같은 회사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의 도전은 이제 또 다시 시작됐다.

한경닷컴 김효진 기자 jinhk@hankyung.com